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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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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에 대한 위기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시민운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서경석 목사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민운동 단체가 미더움의 대상에서 무서움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경고했을 때 이미 시민단체의 위기는 시작됐다. ‘어느 시점’이란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위기의 현실을 애써 외면해도 괜찮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창출에 기여한 진보적 시민단체가 권력의 핵심이 됐고, 두 정권을 뒷받침하는 지지 세력이 되어 권력의 맛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권력에 취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권에서였더라면 환경운동연합 직원의 횡령혐의는 수사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고, 시민단체 대표에 대한 수사는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진보적 시민단체의 권력화 때문이다. 낙선 대상자 86명 가운데 59명을 낙선시키고, 특히 집중 낙선 대상자 22명 가운데 15명을 낙선시키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던 2000년 낙천·낙선운동이 권력화의 계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시민운동 대추락의 시작이었다. 정파성과 선거법 위반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보적 시민단체 인사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권력창출에 기여한 공으로 협조적 동반자가 됐고, 더는 정부를 비판할 수 없게 됐다. 권력화되고 권력과 협조하면서 시민단체 신뢰에 이상이 생겼다. 시민단체 신뢰도가 2003년과 2004년 1위에서 2005년에는 5위까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시민단체를 주도하게 된 과거 운동권 세력이 주로 거리투쟁을 해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투쟁을 하느라 일반 시민과 거리를 좁히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되었다. 시민의 기부가 없으니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후원에 의존했고 감사에는 소홀했다. 동창회 수준만도 못한 회계 관리를 하면서 자신의 대의에 매몰되어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같은 투쟁 사업에 전력하지 말고, 본업인 환경운동과 사회봉사에 충실하면 된다. 운동가 대신 시민이 단체의 운영을 맡으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다.
다음으로 정부 지원과 기업 협조에 기대지 말고 재정의 자생력을 키우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재벌 대기업에만 재정 투명성을 요구하지 말고 자신의 재정을 공개하고 외부 감사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시민은 시민운동에 합류할 것이다. 정부지원 의존이 시민참여를 가로막는다는 연구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단체는 불법 투쟁과 불투명한 조합 운영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민주화 투쟁과 학내 투쟁이 사라지자 몰락한 학생운동을 기억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투쟁 만능과 권력화로 시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노동단체나 학생단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시민단체가 도덕성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시기, 뼈아픈 자기반성을 통해 무엇을 고쳐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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