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칼럼]이건 테러요, 수탈이다

  • 입력 2008년 10월 20일 02시 56분


그가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에 속하는 현주소에 둥지를 튼 것은 1986년의 일이다. 인기 없는 새 아파트여서 이사 간 후 몇 달 동안은 태반이 ‘불 꺼진 창’이었다. 앞은 메밀밭이요 밤에 단지를 거니는 사람도 없었다. 반년이 지나서야 겨우 아파트가 찼다. 5인 가족인 그는 서울 와서 처음으로 독방을 갖게 되었다.

5년이 지나자 근처에 신도시가 생기고 이웃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새 아파트로 가야 득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심신의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그는 계속 눌러앉아 있었다. 22년이 지난 오늘, 같은 승강기를 쓰는 24가구 중 계속 남아 있는 개척민은 2가구뿐이다. 2가구 모두 70대의 노부부만 살고 있다. 나머지는 수없이 주인이 바뀌었다.

이사 온 후 20년 동안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올림픽을 치렀고 민권 승리로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어 5인의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했다. 환호 속에 늠름하게 ‘등극’했으나 대개 끝자락에는 국민의 존경보다 빈축을 샀다. 자가용이 폭발적으로 불어났고 그의 거주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주변 공지에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서 대규모의 큰 시가지가 형성된 것이다.

그의 아파트 시세도 올랐으나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아 별 관심이 없었다. 값이 올랐다는 말에 싫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아파트 생활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사회적 약자와 민중의 벗을 자처하는 변호사가 권좌에 오르면서 아파트 값이 폭등했다. 경제와 이재에 어두운 그에게 친구들은 소위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 뿌린 돈이 아파트로 몰려와 폭등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집값 올려놓고 종부세 덤터기

작년에 그도 세금폭탄을 맞았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치면 1000만 원이 넘는 거액이다. 저희가 집값 올려놓고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우는가? 강도 맞은 기분이요 테러 당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때껏 개인 소비로 지출한 최고 액수는 벽걸이 TV 구입 때 쓴 400만 원이었다. 1가구 1주택에 22년 보유자요 70대의 퇴직자다. 부자 하면 연상되는 부동산도 식도락도 없고 골프도 칠 줄 모른다. 세금 내기 싫으면 이사 가라는 무지막지한 폭언에는 분노할 기력도 없었다. 거주공간은 단순히 먹고 자는 생물적 기능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교육적 공간이기도 하다. 또 개인사와 가족사가 배어 있는 기억과 애환의 정서적 공간이다. 노약자들에겐 특히 그렇다. 그런 사실에 무감한 지적 정서적 무뢰한들이 국민생활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 그는 말할 수 없는 시민적 치욕감을 느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앞에 얘기한 ‘그’같은 피폭자 친구가 필자 주변에는 꽤 있다. 기득권자라고 흰자위를 굴릴지 모르지만 저 1950년대의 쑥대밭에서부터 고단하게 자기를 꾸려온 이들이다. 폭탄을 맞아도 좋으니 그런 아파트에 산다면 원이 없겠다는 반응 때문에 터놓고 불평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국민의 2%밖에 되지 않는 부자를 위한 조처라며 종부세 완화에 반대하는 입장은 참으로 문제가 많다.

종부세에 내재하는 이중과세 성격이나 능력에 따른 과세원칙의 위반에 대해서는 적정한 지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따른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미실현(未實現)소득 과세의 부당함도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이렇게 세법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국민 2% 대 98%의 대결 구도로 쟁점을 몰고 가는 것은 큰 문제다. 모든 것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이분법으로 몰고 간 것은 노무현 정권의 상습적 행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20세기의 중대 정치범죄자들인 백색 및 적색 전체주의자를 포함해서 데머고그들의 상투적인 정치적 수사(修辭)였다. 21세기에 와서도 그런 선동적 수사를 남용하는 것은 한심스러운 후진적 작태다.

1가구1주택 장기보유자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희생자를 내지 말라는 법언(法諺)이 있다. 조세 정의를 위해 세법에서도 유념해야 할 사안이다. 조그만 형평과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큰 정의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소수자에게 부과하는 부정의는 결국 다수자에게도 돌아가게 마련이다.

극소수의 국민에게만 해당하는 예외적인 문제라고 하는 이도 있다.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은 20세기 세계사의 치욕이다. 학살당한 600만 명은 당시 세계인구 20억 명의 0.3%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문제를 유야무야 묵인해도 되는가? 단순 숫자나 비율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이 형평과 정의의 특징이다.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에게 현행 종부세는 테러요 수탈이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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