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테러지원국 해제, 北韓만 남는 장사 아닌가

  • 입력 2008년 10월 13일 02시 57분


미국이 어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KAL기 폭파 만행으로 1988년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지 20년 9개월 만이다. 당시 한국인 승객 93명을 비롯해 115명이 미얀마 상공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북은 지금까지 사과는커녕 범행 자체도 시인한 적이 없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로선 미국의 해제 조치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국은 북한이 2단계인 핵 검증 실시에 동의했기 때문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북이 ‘정확한 신고’와 ‘완전한 검증’ 약속을 지킨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신고 핵시설은 ‘북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찰할 수 있게 돼 검증은 더 어려워졌다.

이런 상태로 북핵문제를 차기 정권에 넘기면 또 얼마나 시간이 흘러갈지 모른다. 한일(韓日) 양국에서 “북한만 남는 장사를 했다” “임기 말에 쫓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북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에 넘어갔다”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나마 부시 행정부가 테러지원국 해제를 발표하면서 “북한이 핵 검증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 다시 명단에 올릴 수 있다”고 단서를 단 것은 다행이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조건부’임을 분명히 하고 차기 정권 출범 전이라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를 보여줘야 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벌써 “핵 검증 이행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실제적 효력을 내고, 6자회담 참가국들이 경제보상을 완료하는 데 달려 있다”며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로 당장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음을 북은 알아야 한다. 핵 폐기 약속을 지키고 인권문제 개선 등 개혁과 개방에 적극 나서야만 국제사회로부터 대접도 받고 지원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조치와 함께 민주당과 좌파세력을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가 6·15 및 10·4 정상선언의 이행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볍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의 진정성을 봐가며 그런 주장을 해도 늦지 않다. “북이 서울을 건너뛰고 바로 워싱턴으로 갈 것”이라는 상투적인 주장으로 상황을 호도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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