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동호]서울-평양, 손 잡는 그날까지

  • 입력 2008년 9월 26일 03시 00분


내일(27일) 평양행 비행기를 탄다. 어느 민간 대북단체가 지원한 시설의 준공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서해를 가로질러 갈 비행기 안에서 내 마음은 또 한 번 어지럽게 설렐 것이다. 이번의 방북은 절망과 희망의 스펙트럼 위 어디쯤 나를 위치시킬지….

하늘 위엔 이미 결실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오고, 그 하늘 위에서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한반도는 아름답게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이 트랩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또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현실은 아직도 결실을 볼 때가 아니라 씨 뿌릴 준비를 할 이른 봄에 머물러 있을 뿐이며, 서울만큼 평양도 미처 준비돼 있지 않음을.

나는 가급적 느린 호흡으로 평양의 공기를 마시고, 길고 먼 시선으로 평양의 거리를 바라볼 것이다. 꿈은 분명 멀리 어딘가에 있긴 하겠지만, 아직은 그 꿈을 꾸기엔 이르므로. 언젠가는 내일의 통일을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오늘의 관계가 너무도 큰 장벽이므로.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남북관계, 열정 대신 냉정 찾아야

그렇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구체적인 현실이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현실을 단박에 단순한 이상으로 넘을 수는 없다. 사랑도 당장은 먹어야 힘이 나는 것이고, 한밤의 달콤한 꿈도 한낮의 피곤한 노동이 지나야 가능한 것처럼.

남북관계에서도 이젠 열정을 버리고 냉정을 찾아야 한다. 뜻 없는 비유도 버려야 한다. 현실의 남북관계란 함께 손잡고 부르는 아리랑으로 발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반갑습니다 다시 만나요’라고 노래 부른다고 해서 다음의 만남이 보장되지 않는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던 김영삼 정부의 낭만도, 햇볕을 쬐이면 변화가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던 김대중 정부의 순진한 기대도 현실적이진 않았다. 인도적 지원이라면서 식량을 차관 형식으로 판매한 노무현 정부의 접근은 그저 눈 가리는 기교에 지나지 않았다. 무조건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의 구호도 현실을 모르는 것이고, 북한이 먼저 변해야 관계를 시작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도 현실을 도외시하긴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리고 북한의 대남정책은 현실을 모르는 것이었거나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척했던 셈이다. 남북관계가 아직 희망이라기보다 절망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결과이다.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 ‘그날’)

분명 남북관계는 잘못되어 있는데 정작 정부는 남이나 북이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이념만 이야기하고 성과만 중요시했지 현실엔 눈감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북관계 개선의 목적이 분단의 아픔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면 이산가족과 납북자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더 늦어서는 안 될 가장 절박한 현실 문제이기 때문이다. 퍼주고라도 해결했어야 할 것은 정상회담이 아니라 그 문제였으며, ‘비핵·개방 3000 구상’보다 더 시급했던 것은 ‘분단 아픔 해결 구상’이다.

현실 어려워도 희망 잃지 말기를

경협을 한다면 채용 및 임금, 통행 및 통신 문제부터 시작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공단 터부터 닦을 일은 아니었다. 비용과 타당성은 따지지 않고 합의부터 많이 한다고 해서 현실의 경협이 당장 발전할 것도 아니었다. 이 모두 현실이 어렵다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우회하려 했던 정책의 결과이다. 어차피 시간 흐르면 희미해질 덧없는 성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십중팔구, 나는 평양에서 확인할 것이다. 남한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 역시 아직 현실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그리고 현실은 한 개인, 어느 한 단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며칠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나는 실망에 잠겨 있을 것이다. 희망하기엔 절망이 너무 크고 절망하기엔 희망을 버릴 수 없어 그 중간쯤 어디에 놓일 실망. 그리고 다음번엔 좌표가 좀 더 희망 쪽이길 바라면서, 김포공항에 내릴 것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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