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PD수첩이 사는 길

  • 입력 2008년 7월 6일 20시 04분


두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5월 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광우병을 걱정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MBC PD수첩 안 봤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필자도 문제의 PD수첩을 4월 29일 방영 때 보고 “프로그램을 저렇게 무책임하게 만들다니, 사람들이 꽤 놀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라 거리로 뛰쳐나올 줄은 몰랐다.

PD수첩의 제작 의도가 광우병 공포의 극대화였다면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라는 선동적인 자막을 배경에 깔고 진행된 프로그램은 다우너(주저앉는 소)를 광우병 소로, 아레사 빈슨을 인간광우병 사망자로 전제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내용이었다. 광우병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미국 쇠고기는 목숨 걸고 먹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PD수첩이 전제한 두 가지 핵심이 모두 거짓 또는 과장 왜곡된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적 근거는 고의적으로 배제하고 편집한 데 따른 명백한 왜곡’이라는 PD수첩 영어 번역가의 ‘양심선언’은 핵심을 찔렀다.

지금까지 확인된 광우병 미국 소는 3마리뿐이다. 그나마 1997년 이후 태어난 수억 마리 중에는 1마리도 없다. 미국 쇠고기 먹고 광우병 걸린 사람도 1명도 없다. 이걸 무시하고 제로에 가까운 미국 쇠고기 먹고 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을 과장 보도한 PD수첩이야말로 ‘미친 프로그램’이란 소리를 들을 만하다. PD수첩 광우병 편은 잘못된 관점과 정치적 의도가 낳은 대표적 오보·왜곡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PD수첩 같은 TV 시사프로의 원조는 미국 CBS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60분(Sixty Minutes)’이다. ‘60분’은 취재 경험이 풍부한 기자들이 주로 만들지만 PD수첩은 PD들이 주로 만든다는 점에서 다르다. ‘60분’은 1968년 9월 첫 방송 이후 40년 동안 장수하고 있는 인기 프로다. 1990년 5월 시작한 PD수첩보다 2배 이상 오래됐다. ‘60분’도 가끔 논란과 오보 소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은 CBS와 MBC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60분’의 대표적 오보는 2004년 미국 대선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관련 보도였다. CBS는 오보의 근거가 된 문건들이 위조됐다는 주장을 무시한 채 문제의 제작진에게 후속 보도까지 맡겼다.

그러나 CBS는 2주일 만에 사장이 직접 사과하고 딕 손버그 전 법무장관과 루이스 보카디 전 AP 사장 등 외부 인사들에게 진상조사를 맡겼다. 3개월 뒤 조사 결과가 나오자 선임부사장, ‘60분’ 책임 PD와 부책임 PD, 오보 당사자를 해임했다. CBS 간판 앵커 댄 래더도 24년 경력에 오점을 남긴 채 물러났다.

MBC 노조는 지난 주말 촛불시위 현장에 ‘국민 여러분, PD수첩을 지켜주십시오’라는 유인물을 뿌렸다. ‘국가 생산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민주노총은 “지도부를 던지는 투쟁으로 PD수첩을 사수(死守)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의 사수 대상이 된 PD수첩의 정체를 알 만하지 않은가. PD수첩이 민주노총과 촛불을 방패삼아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언론이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할 진실 보도, 공정성, 그리고 신뢰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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