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병태]디지털 폭식, 감량의 지혜 찾자

  • 입력 2008년 6월 18일 02시 56분


정보기술(IT) 강국을 자랑하는 한국은 정보의 전달이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장비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유비쿼터스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보기술이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제발전의 인프라가 되리라는 굳건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정보홍수 또는 e메일 과부하가 가져온 폐해에 대한 자각은 이런 믿음이 얼마나 순진하고 위험한 것인지 경고한다.

개인화된 IT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 개인용 컴퓨터(PC) 사용자들이 주당 평균 5시간 이상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느라 낭비하며, 평균 근무시간의 17% 이상을 PC와 관련해 비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인텔사의 조사는 더 악화된 현실을 보여 준다. 인텔 직원들은 e메일 처리에 하루 평균 3시간을 쓰지만 이 가운데 30%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또 3분마다 e메일 때문에 하던 일이 중단됐고 주의력 분산을 경험했다. 인텔사는 이 같은 집중력 방해가 창의력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고 추정했다.

쓰레기편지(스팸메일)로 인한 직접적인 시간 손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내부 e메일을 비롯해 IT 오용에 따른 막대한 생산성 저하 문제는 아직 한국의 경영자들에게는 잘 인식돼 있지 않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및 메신저 활용이 대단히 활성화된 우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집중력 분산 현상이 훨씬 심각할 것은 자명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용자들이 이런 정보홍수를 피하기는커녕 메시지가 계속 유입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보중독증(Infomania)을 유발해 정신병의 일종인 집중력결핍장애(ADD)와 유사한 행동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진단된다.

정보홍수의 또 다른 이차적 간접비용은 불필요한 소통의 장애이다. 사람들의 의사소통은 문자화된 정보 외에 얼굴 표정과 몸짓 등 비언어적 수단에 크게 의존한다. 같은 문장도 말하는 어투에 따라 유머도, 빈정거림도 될 수 있다.

디지털 통신은 사회적 암시(Social cue)에 따른 비문자적 정보를 박탈하고 형해(形骸)화한 문자만 전달한다. 그 결과 종종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손상된 인간관계를 사후에 시정하기 위해 막대한 정서적 비용과 시간의 손실을 치르는 외에도 조직 융화를 위협하게 된다. 신세대가 남발하는 이모티콘과 축약어는 소통장애의 위험을 배가하면서 디지털 자폐현상을 더 확산시킨다.

디지털 통신은 직접대면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기회도 앗아갈 수 있다. 사려 깊은 관리자는 결재 시 업무만 처리하지 않는다. 신입직원의 자세와 의사 표현 방법도 교정해 주고 미래의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태도에 대한 평가와 훈육도 겸하며, 직원의 표정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의 단서도 읽기 때문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정보홍수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 인식의 확산과 함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 우리도 이런 문제에 대한 정확한 통계와 조사가 시급히 필요함은 물론이다. 또한 각 조직에서 조직원들에게 디지털 통신 사용 규범을 통한 디지털 통신문화의 재정립,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디지털 통신문의 작문교육, 때론 일부 외국기업이 시행하는 부분적인 실시간 통신 차단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총체적인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통신은 사회적 기본자본으로 이들 없이 살 수 없다. 활용하기에 따라 막대한 생산성을 지닌 수단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통신 시대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중용의 도는 변함없는 진실이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창의성 역시 숙려의 시간과 침묵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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