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8대 국회, 정치다운 정치 한번 해보라

  • 입력 2008년 5월 29일 22시 42분


18대 국회의 4년 임기가 오늘 시작되지만 ‘쇠고기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서 초장부터 파행이 불 보듯 뻔하다. 고유가(高油價)로 민생고가 심각하고 선진화를 위해 고치고 바꿔야 할 법제도가 산적해 있는 마당에 정치가 실종됐으니 걱정스럽다.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장외투쟁까지 선언했다.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소리도 나온다. 민의를 수렴하는 소통의 통로가 돼 ‘거리의 정치’를 막아야 할 정당이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꼴이다. 정치를 포기하고 국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했는지 모를 일이다.

18대 국회는 여대야소(與大野小)로 출발한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153석, 제1야당인 민주당은 81석이다.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 등을 포함하면 보수 정당들의 의석수는 거의 200석에 육박한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국정을 망칠 수 있다.

17대 국회가 정쟁(政爭)으로 얼룩진 것도 다수당의 독주 때문이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인 152석을 얻어 정치의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지만 이념 과잉으로 초반부터 야당을 무시하고 4대 개혁입법을 밀어붙이는 과욕을 부렸다. 그 때문에 민생이 실종되고 정당 간에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면서 국회는 난장판이 되다시피 했다.

지금의 의석 구도가 비록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고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긴 하지만 정치는 어느 일방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17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야당을 진정한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설득하고 때로는 양보도 해야 한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相生)하는 정치가 바로 정치다운 정치가 아니겠는가.

야당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소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떼쓰기, 악쓰기에 의존한다면 정치의 발전이나 생산적인 국회는 요원한 일이다. 국정에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한다. 야당이 18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장외로 나서겠다는 것은 수적 열세를 의식해 초반부터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쇠고기 파문과 관련한 촛불시위의 분위기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한다면 이는 정치와 정당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자기부정이다.

임채정 국회의장은 17대 국회 마지막 날인 어제 “국회가 국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열어 운명을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하는데 아직 국회와 국민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했다. 임 의장도 17대 국회의 파행과 비생산성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18대 국회를 여는 여야가 새겨들어야 할 고언(苦言)이다. 그는 “여당은 많이 듣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야 하며, 야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정책화하거나 대안을 제시해 국민이 기대고 싶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8대 국회는 생산적인 국회상(像)을 만들어가야 한다. 17대 국회는 의욕만 앞세웠지 생산성은 이전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16대 국회에 비해 3배나 많은 정부 입법안을 제출하고 의원 입법 발의를 했지만 법안 가결률은 각각 51.1%와 21.2%로 이전 국회보다 훨씬 낮았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선진화를 앞당기려면 의정활동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여야가 원 구성 협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곧바로 한미 FTA 처리에 필요한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한미 FTA와 쇠고기 문제는 분리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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