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맹목적 경쟁심이 禍 부른다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은 2004년 말 의료기기 제작업체 가이던트를 254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가이던트는 발표 얼마 후 심장박동보조기 17만 개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안 존슨앤존슨은 거래 중단 의사를 흘리면서 거래가를 215억 달러로 낮춰 제안했다.

이 와중에 갑자기 존슨앤존슨의 오랜 라이벌인 보스턴 사이언티픽이 가이던트를 247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양사의 인수전쟁은 인수가를 계속 올려 놓았고, 2006년 1월 보스턴 사이언티픽이 가이던트를 272억 달러에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거래는 곧 명백한 실패임이 드러나며 ‘사상 최악의 거래 중 하나’란 오명을 얻었다. 가이던트는 2006년 6월 심장박동보조기 2만3000개를 다시 리콜했다. 25달러였던 보스턴 사이언티픽 주가는 17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오직 상대방을 꺾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무리한 행동을 한 후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한 적이 있는가? 이런 결정은 ‘맹목적 경쟁심리(competitive arousal)’라고 부르는 격앙된 감정상태에서 많이 나타난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이런 ‘감정적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 최고의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신호(5월호)는 기업 경영에서 나타나는 맹목적 경쟁심리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집중 분석했다. 디팩 말호트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등은 라이벌 의식과 시간적 압박, ‘스포트라이트(spotlight)’라고 불리는 주변의 관심이 맹목적 경쟁심리에 불을 붙이는 주요 동인(動因)이라고 지적했다. HBR 기사 전문은 다음 주에 발간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호에 실린다.

○ 맹목적 경쟁심리의 원인

가이던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맹목적 경쟁심은 라이벌 의식이 강할 때 가장 흔하게, 그리고 가장 위험하게 나타난다. 말호트라 교수 등은 경매 실험을 통해 경쟁자의 수가 적을수록 라이벌 의식이 커져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실험실 연구에서는 특히 경쟁자가 단 한 명만 남았을 때 참가자들이 흥분과 열망 같은 심리적 자극을 가장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연구진은 경매 실험에서 시간적 압박이 심리적인 흥분을 증가시켜 정보 탐색 능력을 떨어뜨리고, 단순한 정보에 의거해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맹목적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마지막 요인은 주변의 관심, 즉 ‘스포트라이트’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경쟁을 지켜보는 청중이 있을 때 경쟁 참가자의 심리적 흥분이 증가하고 문제해결 능력이나 창조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실제로 경매 실험에서 청중이 있는 오프라인 경매가 온라인 경매보다 더 맹목적인 경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터넷에서 제한 가격을 넘은 초과 입찰 금액은 평균 1134달러였다. 반면 오프라인 경매에서는 초과 입찰 가격이 평균 5609달러에 이르렀다.

라이벌 의식, 시간적 압박, 스포트라이트가 모두 혹은 부분적으로 합쳐질 경우 의사 결정상의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온라인 경매 실험에서 경매의 마지막 날이라는 시간적 압박과, 경매 입찰자가 당신 외에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높은 라이벌 의식을 조장한 메시지를 받은 경매 입찰자들은 일반적인 메시지를 받은 사람보다 재입찰 확률이 50%나 높았다.

○ 감정적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

말호트라 교수 등은 맹목적 경쟁심리를 줄이거나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잠재적인 경쟁 상황을 제거하면 맹목적 경쟁심리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 미국 NBC 방송은 인기 코미디 시리즈인 ‘프레이저(Fraiser)’의 방영권 재계약에서 적정 가격보다 많은 돈을 지불했다. 경쟁사인 CBS(프레이저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와 같은 비아콤 계열)가 특수 관계를 이용해 프레이저 방영권을 가져갈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에서 교훈을 얻은 NBC는 거래 프로세스를 재구축했다. 특히 ‘자기 거래 금지 조항’을 만든 것이 눈에 띈다. NBC와 협상 중인 제작업체가 협상 대상인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그들 (또는 모회사) 소유의 방송사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아예 경쟁자가 나타날 수 없도록 시스템화한 것이다.

라이벌 의식과 시간적 압박, 스포트라이트 등 위험 요소를 축소하는 방법도 유용하다. 라이벌 의식이 위험수위에 이른 경우, 기업은 라이벌 의식이 가장 강한 사람의 협상 참여를 제한해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005∼2006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노사분규 때 평소 사이가 나쁜 사측과 선수 측 대표는 2인자에게 협상을 맡겨 최대한 충돌을 줄였다.

협상의 마감시간을 연장하는 것도 좋다. 항공사 콤에어(Comair)의 최근 노사협상에서 노사 양측은 마감시한을 두 번이나 연장했다.

스포트라이트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책임을 분산해 한 사람에게 주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 언론의 집중조명이 부담스러울 때는 보도가 나가기 전에 여러 상황에 따른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시나리오별 인수금액을 미리 산정해 두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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