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승희]‘장애인 영웅 만들기’ 평범한 장애인 울린다

  • 입력 2008년 4월 19일 02시 58분


장애인의 날이 가까워지면 흔히 장애인의 극적인 인간 승리를 전하는 보도나 기사를 볼 수 있다.

대개 그 내용은 극도로 힘든 상황에서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이,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싶을 정도의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그런 유의 보도를 보고 나면 장애인의 처절하거나 또는 정상적이지 않은 도전에 오히려 씁쓸해진다.

올해는 팔다리 없는 한 어린 소녀(8)가 다른 장애인과 함께 15박 16일간 네팔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등정한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 이야기를 보고 내 입에선 저절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그동안 우리나라 장애 관련 분야는 나름대로 발전을 해왔다. 얼마 전 11일은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역사적인 날이다. 앞으로의 시행은 지켜볼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법은 장애인 스스로가 입법 운동을 전개해 제정된 법률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기본적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표현인 것이다. 그뿐이랴, 이번 총선에서 의원 299명 중 역대 최다인 8명의 장애인 의원이 당선돼 18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게 됐다.

그런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도 있다. 최대한 악조건으로 설정된 상황에 극적인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등산 행사,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휠체어 사용 장애인에게 끝까지 진행하게 하는 국토 순례 대행진, 나아가 다양한 장애인의 행진으로 실시하는 남북통일 기원 행사 등이다.

장애인과 관련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행사 및 이를 보도하는 행태는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그런 행사의 어느 한 자락엔 장애인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아름다운 위력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영웅 만들기는 평범한 장애인을 ‘슈퍼 파워’가 없는 것으로 소외시킬 수 있으며,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부르기 십상이다. 그러니 장애인에게 무언가 해주려고 안달하지 말자. 장애인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더불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알려지도록 우리 모두가 ‘괜찮은’ 사람들로 사는 것이다.

아주 소수의 특이한 능력을 가진 장애인을 치어리더로 내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비를 맞으며 오래 걸으면서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할 때 불평 없이 묵묵히 따라가는 천사가 아니며, 납득하기 어려운 행사에 즐겁게 참석하기는 좀 어려운 그냥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전문 등산가도 가기 힘든 산에 크러치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여름 뙤약볕이나 장마철에 이루어지는 난행 코스의 국토 순례 대행진에서는 빼주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이뤄질 법한 일들이 장애인에게도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이 소박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목표를 위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나 생각, 즉 인지상정에 위배되는 일들은 하지 않는 것이 어떤가.

박승희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 교수 도쿄가쿠게이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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