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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8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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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 글이 사라질 즈음 미국 연수 갔을 때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애리조나 피닉스의 한 지역 신문에 ‘인 앤 아웃’ 햄버거점이 들어선다는 기사가 실렸다. 광고라면 모를까 이런 소재를 기사로 크게 싣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호기심이 동해 들러 보았다. 가게 문밖까지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에이, 햄버거 먹겠다고 줄까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며칠 뒤 다시 들렀다. 여전히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이번에는 10여 분을 기다렸다. 주문을 하니 그제야 껍질 벗긴 통감자를 채치고 요리를 시작했다. 주문한 지 10분 만에 나온 햄버거 맛은 유별났다. 갓 튀겨낸 감자튀김 맛은 일품이었다. 명절 때 정성껏 부친 노릇노릇한 부침개를 연상케 했다. 직영 농장에서 정성껏 키운 최상등급 소, 신선하고 영양이 풍부한 채소를 매일 공급받아 재료로 쓴다고 했다. 재료를 보관하는 냉동고나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보관하는 온장고가 없다는 것도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점포 곳곳에 ‘질은 인 앤 아웃의 모든 것’ 같은 글이 나붙어 있었다.
9일 아침을 맞은 유권자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많은 지역구에서 후보 등록 직전까지 각 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 바람에 누가 출마했는지도 모른다. 그 당의 정책과 공약이 뭔지는 더더욱 모른다. 무늬만 개혁인 파행 공천은 혼란을 부추겼다. 괜찮은 상품에 저질 불량품도 섞여 있는 형국이다. 선거 막바지에는 어김없이 돈 선거, 흑색선전의 망령도 되살아났다. 제대로 된 ‘깜’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불량품이든 뭐든 사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못된 심보다. 그러니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이 50%에도 못 미쳐 역대 총선 중 최저를 기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60년 전 두 형제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만든 인 앤 아웃의 점포 수는 140여 곳으로 늘어났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트럭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3개 주에만 점포를 둔다는 영업철학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미국 서남부를 여행하다 점심 때 줄을 선 햄버거 가게가 보이면 영락없이 인 앤 아웃이다.
‘인 앤 아웃’의 뜻이 무엇일까. 몇 달러밖에 하지 않는 패스트푸드일망정 최고 재료로 만든 질 좋은 음식을 찾아온 손님에게 정성껏 대접한 뒤 보내겠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을 만만하게 보고 저질 후보, 불량 후보도 끼워 파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불량품은 사먹지 않으면 되지만 국회의원은 그럴 수도 없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투표하지 않는 바람에 뽑혀서는 안 될 사람들이 뽑혔다고 치자. 4년간 계속될 그 폐해는 크고 심각해 나라의 앞날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유능하고 품격 있는 선량 후보는 들여보내고(In) 불량 후보는 퇴출시키는(Out) 유권자들의 ‘인 앤 아웃’ 혁명을 기대한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