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암]경제 살리기와 국민 섬기기

  • 입력 2008년 4월 4일 03시 00분


다섯 손가락을 찔러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을까마는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은 엄연히 다르다. 최고나 으뜸을 나타낼 때는 흔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므로 새끼손가락이 엄지손가락이 된다면 대단히 큰 변화라고 하겠다. 이명박 정부의 5대 국정지표 중 바로 이런 변화를 한 지표가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섬기는 정부’의 국정지표를 다섯 번째로 제시했으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으뜸 지표가 됐다.

국민을 섬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요즘에는 국민을 섬기겠다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자주 보게 되지만 선거가 끝나도 그럴지 의문이 든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국민을 섬기고, 국민이 정부로부터 섬김을 받기가 왜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자. 우선 정부가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고 해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경제적 의사결정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경제를 위해 채택돼야 할 정책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채택되지 않거나 표를 의식한 나머지 반시장경제적 정책을 채택하게 된다.

인기영합 없는 경제 중시 행보

또한 국민이 섬김을 받으려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서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고객이 기업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려면 제품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시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이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국민의 이해관계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첫 번째 국정지표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아예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가 부족하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국민을 대통령으로 모시겠다는 그의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대공황 때 활동한 인기영합주의적 정치가 휴이 롱이 ‘모두가 왕’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으므로 노 전 대통령도 그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결국 그는 인기영합적 정책을 펼치다가 임기 초 얻었던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는 정책도 인기영합적이지 않겠는가? 섬김의 정책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행정규제를 개혁하는 한편, 법질서를 엄격히 확립하겠다는 내용이므로 인기영합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요즘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걱정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걱정과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지나치게 인기영합적이어서 걱정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지나치게 비인기영합적이어서 걱정하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지나치게 정치적이어서 걱정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지나치게 경제적이어서 걱정하는 것 같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당선 직후에 비해 떨어진 것도 대통령이 경제만 중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사는 정치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를 살리려다 보면 국민을 섬기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경제적 의사결정이 정치적 의사결정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음을 감안할 때 그럴 수 있겠다. 규제완화로 경쟁의 위험에 놓인 기업이나 감세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국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섬기지 않고 대기업에만 혜택을 준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업인에게만 공항 귀빈실 이용 기회를 주지 말고,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정치적 비용들은 어쩌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다. 이런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다 보면 바로 인기영합적 정책의 수렁에 빠지게 되므로 기꺼이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고통분담 비용도 고려해야

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비용을 치르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 더 큰 문제다. 흔히 새롭게 출발하는 정부는 자신감에 가득 찬 나머지 새로운 정책의 수행에 따르는 고통이나 비용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벌써부터 해외 여건의 악화로 물가가 뛰고 경기선행지수가 악화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아무쪼록 새 정부가 경제 살리기의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면밀히 계산하면서 국민을 섬기는 정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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