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企·土·不·二, 기세등등한 개도국 토종기업들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소비패턴 인프라 등 텃밭시장은 우리가 잘알지…”

글로벌기업 앞에 기세등등한 개도국 토종기업들

신흥시장의 토종 기업들이 약진하고 있다. 토종 기업들은 거대 다국적 기업에 비해 자본과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현지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야후와 이베이가 중국에서 철수했고 NEC와 파나소닉이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물러나는 등 많은 다국적 기업은 수모를 겪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신호(3월호)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10개 신흥시장의 대표적 토종 기업 50개의 매출액이 매년 50%나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아린담 바타카리야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 등이 분석한 토종 기업의 성공 비밀을 간추린다. HBR 기사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 6호(4월 1일자)에 실린다.

○ 맞춤형 상품 개발

인도 샴푸 시장에서는 유니레버와 P&G, 로레알 등 거대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력과 자본이 부족한 인도 현지 업체인 카빈카레는 이들과 정면으로 승부하지 않았다. 대신 샴푸를 작은 봉지에 담은 1회용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했다. 인도에는 대용량 샴푸를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많다. 다국적 기업이 간과한 이들 저소득층은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작은 봉지에 담긴 샴푸에 열광했다. 결국 거대 다국적 기업의 공세 속에서도 후발 주자인 카빈카레는 맞춤형 상품으로 시장점유율을 16%까지 끌어올리며 선전하고 있다.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대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e메일 서비스를 중심으로 인터넷 포털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컴퓨터 채팅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더 선호했다. 이런 취향에 맞춰 중국 토종 기업인 텐센트는 무료 채팅 프로그램과 게임, 애완동물, 휴대전화 벨소리 다운로드 서비스를 메신저와 함께 제공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MSN메신저의 시장점유율이 15%인 반면 텐센트의 ‘QQ메신저’ 점유율은 무려 70%를 넘는다.

○ 인프라스트럭처 부족을 위기로 활용

개발도상국은 사회 기반시설과 유통시설이 부족하고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도 낮다. 다국적 기업은 인프라스트럭처 부족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지만 현명한 토종 기업들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한다. MS와 닌텐도, 소니 등 거대 기업들은 중국에서 해적판 소프트웨어 범람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중국 게임업체 샨다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이 실시간 게임을 즐기는 다중접속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 시장을 개척했다.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게임을 하기 때문에 해적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 중국에는 신용카드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온라인 결제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샨다는 오프라인에서 선불카드를 판매해 사용자를 끌어 모았다.

○ 저임금 노동력 활용

이머징 시장의 상당수 토종 기업들은 자동화에 의존하기보다 저임금 노동력을 적극 활용해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을 동시에 추구한다. 중국에서 가장 큰 옥외광고 기업인 ‘포커스미디어’는 90개 도시의 13만 개 지점에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광고를 내보내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광고판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광고 콘텐츠를 교체하는 식의 첨단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다. 대신 저임금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누비며 광고를 담은 DVD나 플래시카드를 교체해준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운영비가 줄어들고 고객에게 더 유연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만약 이 회사가 광고판을 네트워크로 연결했다면 중국 정부는 포커스미디어를 방송사로 인식하고 규제했을 수도 있다.

○ 발 빠른 규모 확장

대부분 신흥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기면 수많은 기업이 몰려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우량 토종 기업들은 재빨리 규모를 키워 전국 단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다.

포커스미디어는 2003년 사업을 시작한 후 공격적으로 지역 업체를 인수합병해 전국 단위에서 영업하는 최초의 기업이 됐다. 중국 유아용품 유통업체 굿베이비는 지역 연합체를 형성해서 전국 각지에 거점 점포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굿베이비는 1600개 단일 점포와 백화점 매장, 300개 판매자로 구성된 강력한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또 2010년까지 500개 지점을 추가로 개설하기로 했다. 굿베이비는 막강한 유통망을 기반으로 육아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주목 받는 신흥시장의 토종 기업 (자료: 하버드비즈니스리뷰 3월호)
국가기업2006년도 매출 증가율
(전년 대비 %)
시장 내 지위주요 외국 경쟁사

바이두163최대 인터넷 검색 엔진구글 차이나
차이나 반케(China Vanke)70최대 자산개발회사외국계 합작 기업들
포커스미디어213최대 옥외 광고 회사Clear Channel, JCDecaux
골드윈드 사이언스&테크놀로지209최대 풍력장비 제조업체GE


B2W63최대 온라인 기업fnac.com
골 리나스 아에레아
인텔리젠티스
42급성장하고 있는 국내선 항공사-
그루푸 포시티부 89컴퓨터업계 선두기업델, HP, 레노보

바티 에어텔59최대 민간 통신회사허치슨텔레콤
카빈카레0.5세 번째로 큰 생활용품업체로레알, P&G
ICICI은행63최대 민간 은행시티은행, HSBC,
스탠더드차터드
타이탄 인더스트리44최대 시계 제조회사스와치


파르마시아 과달라하라132위 제약 및 유통회사월마트
엘렉트라 테크놀로지101위 유통회사월마트
시그마 알리멘토스7냉장 및 냉동식품업계 선두기업네슬레, 다농

약자로 보는 이머징 마켓

세계적 투자은행과 언론들은 21세기 세계 경제를 주도할 이머징 마켓의 경제 권역을 다양한 약자로 지칭하고 있다.

■Next 11

넥스트 일레븐.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브릭스에 이어 선보인 용어. 브릭스 이후 세계 경제를 주도할 만한 잠재력과 많은 인구를 동시에 지닌 나라들을 지칭한다. 차세대 브릭스로도 불리는 넥스트 일레븐에는 한국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멕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필리핀, 터키, 베트남 등 11개국이 속한다.

■E7

세계 7대 선진국의 모임인 G7(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캐나다)과 비교되는 7개 이머징 국가의 연합. 브릭스 4개국에 인도네시아, 멕시코, 터키를 포함한다.

■BRICs

브릭스. 골드만삭스가 2002년 개발한 용어로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4개국의 머리글자를 합해 만들었다. 21세기 세계 경제를 주도할 4개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면서 브릭스라는 용어도 각광받고 있다.

■Chindia

친디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05년 사용한 용어. 브릭스 4개국 중 경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고 인구도 가장 많은 ‘중국과 인도(China+India)’가 향후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러시아와 인도를 합친 러디아(Rudia)란 용어도 쓰인다.

■IBSA

이브사. 인도(India) 브라질(Brazil)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용어. 3개국 정상은 작년 10월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이브사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VISTA

비스타. 베트남,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 아르헨티나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용어.

▼개도국 기업이 인수한 선진기업 수 10년새 18배…괄·목·상·대▼

브릭스(BRICs) 등 신흥개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일개 지방에 불과한 광둥(廣東) 성의 국내총생산(GDP)이 4220억 달러로 대만의 37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15년 광둥 성의 GDP가 한국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 신흥개발국의 실질구매력 환산 GDP는 세계 전체의 40%에 불과했지만 올해 50%, 2015년 57%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브릭스라는 용어를 만든 골드만삭스는 당초 2010년 브릭스 국가의 GDP가 세계 전체의 10% 이상을 담당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2007년 브릭스 국가의 GDP는 이미 전 세계의 15%를 차지했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신흥개발국의 기업들은 이미 세계 기술 혁신과 인수합병(M&A)의 주체로 떠올랐으며 개도국 국부펀드의 영향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 저임금,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선진국 기업들을 추격하고 있는 신흥개발국 기업들은 선진 기업들이 취약한 제조기술 및 저원가 기술 혁신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만의 전자기기 제조 대행업체인 훙하이(鴻海)는 2000년대 들어 연 30% 이상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금형, 케이스 제조, 조립 분야의 생산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훙하이는 아무리 복잡한 제품 형태라도 고객의 요구대로 제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애플 아이폰의 이음매 없는 마감 처리는 훙하이가 보유한 레이저 용접 기술의 대표작이다.

신흥개발국 기업의 선진 기업 사냥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1997년 불과 4건에 불과했던 개도국 기업의 해외 M&A가 2006년 72건으로 급증했다. 레노보의 IBM PC 부문 인수,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화학회사의 GE 플라스틱 사업부 인수 등이 그 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 기업의 M&A를 주저하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신흥개발국 국부펀드의 영향력 확대도 예사롭지 않다. 개도국 국부펀드는 지난해 헤지펀드, 사모펀드와 함께 세계 금융시장의 3대 큰손으로 부상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선진국 금융시장의 돈줄이 막히면서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반면 개도국 국부펀드들은 600억 달러의 거액을 서방 금융기관에 수혈하는 위력을 과시했다. 이들 국부펀드는 자신들의 글로벌 투자 확대가 단순한 재무적 자본 투자에 불과하다고 설명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은 단순히 신흥개발국을 유망 시장이나 생산 기지의 관점에서 접근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흥개발국과 그 기업들을 경쟁자의 관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신흥개발국 기업들의 기술 역량 강화에 맞서 어떤 형태의 기술적 차별화를 도모할 것인지, 선진 기업의 브랜드를 인수한 신흥개발국 기업들에 대응해 어떤 대응책을 세울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흥개발국 자본 유치 또한 고려해야 한다. 예상외로 빠른 신흥개발국의 급성장이 국내 경제 및 기업에 새로운 도전 과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나준호 연구원이 전해주는 신흥개발국 기업들의 성장 배경과 대응 방안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호(4월 1일자)에 자세히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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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호(3월 11∼24일)에 실리는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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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EAD Knowledge/노키아의 민첩성이 떨어지고 있다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략적 민첩성이 요구된다. 전략적 민첩성이란 과감한 투자나 사업을 철수 할 수 있는 능력, 신사업을 단기간에 궤도에 올려놓는 능력, 리더십의 일체화와 책임감을 갖는 능력 등을 뜻한다. 노키아 전직 임원과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연구진은 노키아가 초기 전략적 민첩성을 잃고 있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Knowledge@Wharton/미국 프로야구 스테로이드 파문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89명이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와튼스쿨 연구진은 메이저리그 약물 파동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경기에 대한 팬들의 열기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분석했다. 또 소비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비도덕적인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통찰을 제시했다.

▼베스트셀러 프리뷰/도요타 기업문화의 비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성공 비결에 대한 많은 분석이 제기됐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기업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저술가이자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매기 씨는 최근 저서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트렌드를 파악하며 직원 모두가 책임감을 갖도록 유도한 도요타의 기업문화 본질을 분석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역사학자 데이비드 매컬로 인터뷰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매컬로 씨는 역사를 알아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훌륭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경청(listening)’의 미덕도 갖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조지 워싱턴 장군과 해리 트루먼 대통령 등이 갖췄던 자질과 숨은 이야기 등도 소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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