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기업인 핫라인

  • 입력 2008년 3월 6일 03시 00분


따르릉. “이명박입니다.” “대불산단 입주 기업인입니다. 블록 운반에 지장을 주는 전봇대는 지중화(地中化) 사업이 끝나 다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교량 폭 확장이 미흡해 선박 블록을 옮기기가 불편합니다.” 또 따르릉. “대통령입니다.” “중소기업인입니다. 법인세를 깎아 주면 투자도 고용도 늘릴 수 있습니다.” 이번엔 오전 5시 국제전화다. “막 일어나던 참입니다. 말씀하세요.” “미국 기업과 투자유치 계약을 곧 맺을 건데, 수도권 투자가 막혀 어려움이 큽니다. 규제 완화를 서둘러 주시면 일자리를 5000개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집무 중에는 물론이고 침실에서도 받겠다는 ‘24시간 기업인 핫라인(hot line)’이 가동될 경우에 예상되는 상황들이다. 다른 창구를 무시하고 대통령 휴대전화를 마구 눌러 댈 기업인은 거의 없을 테지만, 투자증대 방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할 채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업인들의 마음이 든든해질 수 있다. 반면에 기업을 규제하는 데만 익숙한 공무원은 이 ‘MB폰’이 무서운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핫라인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다음 해인 1963년 8월 미국 백악관과 옛 소련 크렘린궁 사이에 개설된 직통 텔레타이프 통신선이 효시다. 사고, 오산(誤算), 통신 실패 등에 따른 전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뇌부 간 직접 대화의 길을 터놓은 것이다. 그 뒤 프랑스 영국이 소련과, 미국은 중국과 각각 핫라인을 설치했다. 남북한 간에도 가동돼 온 핫라인이 이젠 대통령과 기업인 사이에도 필요해진 것이다.

▷이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 수도 있다.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주거나 ‘함께 뛰자’고 부탁하는 대통령의 전화를 받는 기업인은 신이 날 것이다. 핫라인 개설 1년 후 이 대통령이 기업인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다. “제가 건의한 20건 중 19건이 즉각 해결됐고 1건도 곧 처리된다고 합니다. 덕분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있습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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