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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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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이라는 초강경수를 둔 직후 ‘백년 숙적’ 미국에 놀라울 정도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2007년 3월 미국을 방문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1970년대 미중 관계 개선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한반도는 중국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침략 대상이었다.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는 북한에 도움이 되고 지역을 안정시킨다”는 발언을 했다. 북한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협력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 발언이었다.
북한은 또 베트남의 개혁 개방 모델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의 농득마인 서기장이 50년 만에 평양을 방문했고 김영일 북한 총리도 대규모 방문단을 이끌고 베트남을 방문했다.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외세 위협(미국)을 이유로 강력한 군사력과 철저한 통제정책을 고집했다. 그 결과 베트남은 동남아 최빈국으로 전락했고 국민은 나라를 버리고 보트피플이 됐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문제는 외세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개방 개혁을 추진하는 ‘도이머이’ 정책을 취한다.
베트남 스스로가 미국의 까다로운 전제조건들을 충족시키면서 관계 개선을 추진한 것이다. 결국 세계에서 주목받는 활기찬 베트남 경제가 현실화됐다. 베트남에 대한 북한의 갑작스러운 관심은 대미 관계 개선의 의사표시라고 본다. 그리고 작년 7월 김계관 부상은 베를린에서 미국 국무부의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게 뉴욕 필하모닉을 지목해 평양으로 초청했다.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이 갖는 외교적 의미를 의식한 의도적 초청이었다.
대중 전략에 대한 협력 의사, 베트남 모델에 대한 관심,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 평양공연에 이르는 북한의 대미 관계 개선 러브콜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관건은 역시 핵 문제다. 북한은 2·13합의의 완전한 핵 신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대미 수교와 핵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핵 시설에 대한 ‘낮은 수준의 불능화’로 목표를 이루었듯 핵 프로그램에 대한 ‘낮은 수준의 신고’로 문제를 넘기려 한다. 낮은 수준의 핵 신고는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핵무기나 물질을 폐기할 리 없다.
핵 협상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6자회담의 협상 틀을 깨지 않고 북핵 관리에 초점을 둔다면 ‘낮은 수준의 핵 신고’로 일단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가까이 협상 자체가 목적이 된 구도가 지속되면서 북한은 조금씩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해 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핵 폐기라는 본연의 협상 목적에 충실하려면 우리는 ‘완전한 핵 신고’를 관철해야 한다. 한국의 정권 교체, 미국의 대선 국면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이벤트가 전개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뉴욕 필하모닉이 1893년 처음으로 연주했던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가 평양에서 연주됐다. 이번 공연이 북한을 ‘구세계에서 벗어나 신세계로 가는 역사’를 만드는 음악회가 될 것인지는 뉴욕 필하모닉의 아름다운 음률을 듣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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