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세상/차윤정]숲 강 하늘 돌고 도는 물의 여행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우리나라의 겨울 가뭄이야 일상적인 것이라 하지만, 가물어도 너무 가물다. 가뭄의 한가운데, 한반도의 남쪽 숲에서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받아내느라 나무마다 고무관이 꽂히고, 해당 지자체들은 지역 축제로 한창이다. 저 멀리 북태평양 연안에서 100m 높이의 레드우드가 양수기도 없이 흙 속의 물을 끌어올려 공기 중으로 내뿜는 경이로운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아직 잎도 나지 않은 나무가 끌어올린 수액은 기적과 같아서 사람들에게 온갖 믿음을 자아낸다.

나무줄기로 흘러나오는 물은 흙 속에서 끌어올려진 물이다. 나무의 가장 부지런한 뿌리는 언 땅이 막 녹아날 때를 맞추어 깨어난다. 미미한 양으로 존재하는 흙 속의 물기는 어린뿌리들의 수고로 나무줄기 속에서 물줄기를 이루고 지상으로 밀어 올려진다. 나무의 눈까지 도달한 물기는 내부적으로 눈이 깨어나는 일을 진행시킨다.

고로쇠나무의 줄기에 난 구멍으로 흘러나오는 물의 양을 보면 나무가 끌어올리는 물의 양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마다 다르겠지만 온대지역의 숲에서 자라는 수령 100년 정도의 참나무 한 그루는 시간당 30m의 속도로 단지 여름 한낮 동안 100L 이상의 물을 지상으로 펌프질한다. 나무 한 그루가 이 정도인데, 숲이 뿜어 올리는 물의 양은 엄청날 것이다.

사실 이렇게 퍼 올린 물은 그 양으로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라 행하는 역할로 더 위대하다. 바로 지구 기상에 대한 기여다. 끌어올린 물의 단지 1%만이 체형 유지와 생리적 과정에 이용되고 나머지 99%는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지구 물 순환시스템에서 숲으로부터 내뿜어진 수증기는 더 많은 양의 강우를 만들어 낸다. 지구 차원에서 보면 전체 수증기량의 15∼20%만이 육지에서 발생하고 대부분 바다에서 생긴다. 그러나 바다에서 증발된 양의 10%만 육지로 오고 나머지는 바다에서 다시 비로 내린다. 일부 해안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륙지역은 강수의 65%가 다른 육지에서 증발된 수증기로부터 온다. 컴퓨터 모의시험 결과 육지로부터 오는 증발산량이 없다면 북미의 강우량은 70∼8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세기 들어 강우량이 감소한 지역이 파나마 말레이시아 인도 등과 같이 숲이 심하게 파괴된 지역임을 감안한다면 숲이 지구 물 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증산(蒸散)은 또 지구 온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수증기는 열을 서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지구와 우주 사이 에너지의 흐름을 바꿔 지구 열수지에 공헌한다. 물이 수증기로 변할 때는 열을 흡수하지만 강우로 내릴 때는 열을 방출한다. 열은 지구의 자전운동에 의해 다양한 기류를 타고 곳곳으로 이동한다. 이 때문에 열대지역의 숲 파괴는 바로 열대지역의 기후 변화를 유발하지 않는다. 우리 숲의 큰 변화 때문이 아니라 지구 전체 숲 환경의 파괴로 이미 우리의 기상은 이상 징후를 보인다.

생태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되먹임작용(feedback)을 갖는다. 불행히도 지구 기상은 극단적 혼돈시스템(positive feedback)의 예이다. 숲의 제거라는 사건으로 파생되는 기상시스템의 혼돈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지구를 교란시킨다. 다행히도 생태계는 또한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나무 한 그루의 가치가 숲으로 모아지면 상상 이상의 위력을 갖는다. 시너지 효과다.

모든 숲이 크든 작든 간에 강이나 하천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라. 특히 숲은 다습지역에 형성되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물이 증산을 통해 대기 중으로 발산된다. 하물며 계곡의 고로쇠나무야. 고로쇠수액의 의미는 단지 뼈를 이롭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차윤정 산림생태학자·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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