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2월 19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에 앞서 금융감독위원회는 2000년 신용카드업체 거리모집 금지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규제개혁위원회는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라며 반대해 금지는 1년 이상 늦춰졌다. 그 사이 상황은 악화됐고 신용카드 사태는 결국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전봇대’로 대변되는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보며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규제 완화’는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금융 분야의 규제 역시 대폭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수위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을 일부 완화한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재정경제부의 금융 분야와 금감위를 통합해 신설할 금융위원회 정원도 크게 감축할 계획이다.
한국의 금융감독 당국은 ‘규제 양산의 온상(溫床)’ ‘민간 금융회사의 상전’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명박 당선인이 인수위원들에게 “서울시장 때 무슨 회의만 하려면 금융정책을 다루던 공무원이 참석하지 않아 개탄했다”고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당선인만큼 금융 규제의 덕을 보는 대통령도 드물다.
YS 정부 때 외환규제 완화 등이 원인이 된 외환위기 대처에 DJ 정부는 2, 3년간 진을 뺐다. DJ 정부 때 풀린 신용카드 규제로 노무현 정부도 초기에 고생했다.
이에 비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졌지만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안정적인 모습이다. 비록 “강남 아파트 값을 잡겠다”는 다른 목적이었지만 노무현 정부의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는 세계적 부동산가격 하락에 선제적으로 대처한 셈이 됐다.
교통법규는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국민의 안전을 지켜 준다. 상당수 금융규제는 교통경찰이나 신호등과 역할이 비슷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가 인허가권을 가진 금융감독 부처를 두고 적정한 규제를 통해 사전에 위험을 조율한다.
다른 분야 규제를 경쟁적으로 푸는 선진국들도 투명성, 건전성을 감독하는 금융 규제는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수도권에 공장 설립을 허용하는 것과 금융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뜻이다.
인수위는 이미 금융 분야에서 한 차례 머쓱한 일을 겪었다. ‘신용 대(大)사면’과 금융회사 신용불량 기록 삭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금융회사들의 반발로 수그러든 부분이다. 금융 문제가 얼마나 민감하고 복잡한 것인지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금융은 흔히 인체의 혈관에 비유된다. 사회 각 분야 경제활동을 연계해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는 굴착기를 동원해 뽑아내야 한다. 하지만 금융 분야의 규제를 제거할 때는 혈관수술을 하듯 예리한 메스와 날카로운 핀셋이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