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노조 투쟁의 세계화

  • 입력 2008년 2월 12일 02시 57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60년 전인 1848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 말미에 써서 유명해진 말이다. 사실 이 말은 화가 폴 고갱의 외할머니인 프랑스 여성인권·노동 운동가 플로라 트리스탕이 1843년 처음 사용했다. 시효가 끝난 지 오래이지만 세계의 노동운동단체들은 아직도 이 구호를 애용한다. 우리 민노총도 지난해 5월 1일 제117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 노동자대회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리고 투쟁하라!”고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이석행 민노총 위원장이 어제 미국 노동계와 의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저지를 촉구하고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며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비정규직 고용 보장과 시위 참여자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이랜드 노조는 3월 이후 홍콩 중국 등지에서 이랜드그룹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원정 투쟁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성격은 좀 달라도 노동자 투쟁의 무대가 갈수록 세계화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노동, 농민운동 단체들은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 2005년 12월 홍콩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격렬하고 다양한 시위로 세계적인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한미 FTA 협상이 처음 열린 2006년 6월에는 수십 명이 워싱턴에 몰려가 FTA 저지 시위도 벌였다. 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데 들어갈 만만찮은 비용을 생각하면 노동계가 꼭 가난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노동계는 업종에 따라 FTA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다. 국회의원들도 출신 지역이 제조업 중심지냐, 농촌이냐에 따라 찬반 의견이 갈려 있다. 미국 정치인과 노동단체는 자신들의 유권자와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도 글로벌 무대를 누비는 억대 연봉자부터 저임금 비정규직과 장시간 노동자까지 천차만별인 시대다. 민노총이 ‘만국의 노동자’를 믿고 미국 노동계 및 의회와 FTA 비준 저지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인 전략이 못 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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