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평중]거품의 학벌사회

  • 입력 2008년 1월 22일 2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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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고려대 교우회의 용비어천가가 화제다. 고려대 교우회의 ‘오버’를 비판한 한 신문 사설은 “고대 교우회의 마피아 본색”이라는 신랄한 제목까지 달고 있다. 한국 사회 3대 ‘패밀리’의 하나인 고려대 교우회가 이명박 교우의 당선으로 기고만장해 “‘승리의 새벽’을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우회 100년사에 실린 “‘명’비어천가는 압권”으로서, “치졸하기 짝이 없는 문장은 한 오라기 지성의 흔적마저 지워 버렸”고, “광신적 찬양과 선동이 넘쳤다”고 그 사설은 개탄한다.

이에 격분한 고려대 출신의 다른 언론인은 위 사설이 “신문의 기본을 내팽개치고 짓밟은 난동, 난설(亂說)”이며, “악에 받친 듯한 말투와 해괴한 논리로 스스로 패거리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쏘아붙인다. 모교에 대한 애정이 넘쳐 흥분한 고려대 동문들을 “국가권력 찬탈을 도모한 대역무도한 집단인 양 매도한 것은 우습고도 개탄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신문 지상에서 주고받기에는 지나치다 싶은 이런 표현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학벌을 위시한 권력독점 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사안인가를 입증한다. 모든 사회에서 권력은 불균등하게 분배되기 마련이지만 한국 사회는 훨씬 심한 편이다. 부의 양극화나 지역 차별도 결국은 권력 배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감정이 점차 완화되는 것과 달리 학벌 현상에 큰 변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명문대 학력이 현대판 호패인가

극소수 명문대 출신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의제를 형성하고 정책을 결정하면서 지배계층으로 직행하는 상황에서 명문대 학력은 현대판 호패로 작동한다. 애초에는 능력의 지표였을 학력이 특권화해 학벌로 변질되는 것이다. 매사에 인맥이 중요한 우리 풍토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 학벌로 편입되는 것이 지름길이다. 우리 사회 교육문제 해결이 난망(難望)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려대 교우회의 행보는 조금 지나쳤다. 동문들만 참여하는 지면이나 행사라 할지라도 사회적 파장을 고려했어야 했다. 고려대가 명실상부한 민족 대학으로서 한국 사회를 이끌기 위해서도 양식과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한국적 학벌사회의 핵심인 서울대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고려대 교우회만 비판하는 것은 정곡을 비켜간 것이다.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학계, 중앙 언론사 간부, 재계 최고경영자(CEO)의 학력 통계 자료는 서울대라는 상징 자본이 핵심 권력자원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는 ‘뜨는 권력’의 원천인 대통령직인수위의 인적 구성에서도 증명된다.

고려대 교우회의 오버는 이른바 SKY대학 위계 안의 2등 또는 3등이 부동의 1위를 향해 외치는 불만의 고함소리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대의 함성은 ‘그들만의 리그’에 그칠 뿐 대부분의 시민에게는 소음으로 들린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독점적 지원과 사회 속의 특권을 누리는 서울대가 그에 상응하는 객관적 실력과 책임을 입증하지 못하고, 편입학 부정의혹에 시달리는 연세대가 사학의 자율성을 회의하게 만들 때 한국적 학벌사회의 정당성은 땅에 떨어진다.

모든 나라에는 명문 대학이 존재한다. 실력 있는 명문대 출신이 인정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적 학벌의 폐해는 민주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원래는 나름의 근거를 가졌을 학력 격차가, 끼리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조폭적 패거리 논리로 타락할 때 민주적 합리성은 파괴되고 만다. 학력이 학벌로 변질되고 특정 학벌의 지배가 굳어질 때 신판 계급사회가 출현한다.

학벌에 의한 권력독점 막아야

교육문제 해결은 특정 대학들의 독점 체제를 깨뜨리는 데서 시작된다. 극소수 학벌이 독과점하는 권력 자원을 시민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분산하고 개방해야 한다.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국내용 학벌’의 거품을 벗겨낸 공정 경쟁의 장에서야 학생들의 희망이 꽃피게 될 것이다. 학벌에 의한 권력 독점이 완화되어야 입시 지옥도 비로소 해소된다. 진정한 실용주의의 요체는 능력은 살리되 특권은 줄이는 데 있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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