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대만에 ‘수출’된 이명박 당선인

  • 입력 2008년 1월 1일 20시 18분


요즘 대만에서는 한국 선거 바람이 대단하다. 지난주 대만에서 만난 20여 명의 정치인, 관리, 학자들은 한결같이 한국 대선 결과와 이명박 당선인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대만은 12일 입법원(국회) 선거에 이어 3월 22일 총통(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임박한 선거 일정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한 대만 국민의 관심은 놀랄 만큼 뜨거웠다.

한국과 대만의 닮은꼴 정치

집권당인 민진당과 최대 야당 국민당은 노골적으로 이 당선인을 선거 운동의 호재로 삼고 있다. 민진당은 이 당선인과 대만 대선 후보를 비교하는 정치 광고를 만들어 유권자들을공략하는 중이다. 이 당선인과 민진당 셰창팅 후보의 큰 사진을 마주 세우고 국민당 마잉주 후보의 작은 사진을 곁들인 광고는 세 사람을 비교하는 표로 이어진다. 이 당선인과 셰 후보는 가난한 서민의 아들인 반면 마 후보는 권세가문 자손. 민주와 인권 경력에서는 이 당선인과 셰 후보가 투옥 또는 기소된 경력이 있지만 마 후보는 반대로 민주화운동 탄압. 광고는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복원했듯이 셰 후보도 가오슝 시장 시절 아이허(愛河) 강 정화에 성공했으나 마 후보의 타이베이 시장 시절에 지룽(基隆) 강 등 주요 하천의 오염은 악화됐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국민당의 마 후보도 정치 광고를 통해 “한국 대선과 대만 선거는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와 차기 정부에 이념 대결보다 경제 살리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두 후보가 ‘대만의 이명박’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정당 관계자들도 서슴없이 그런 말을 했다.

왜 한국 선거 바람일까?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우선 한국에 대한 친밀감 때문이다. 매년 40만 명의 대만인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특히 크다는 양국의 공통적인 현실도 대만 국민이 한국 대선을 비교대상으로 삼게 만들었다.

경제적 요인도 있다. 경제에서 앞선 한국이니 정치도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만 경제는 지난해 4.5% 성장에 이어 올해 5.5% 성장을 예상한다. 외환보유액 2600억 달러에 수출입 4200억 달러(2006년)가 넘는 세계 16위 무역대국이다. 실업률은 지난해 3.5%에 불과해 한국보다 양호하다. 인구 2300만 명의 작은 나라가 이룬 자랑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한국에 추월당했다는 생각이 대만 국민을 짓누른다. 2년 전부터 대만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에 뒤지기 시작했다.

대만국립대의 주윈한 교수는 이 당선인 열풍을 승자를 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일종의 행복 심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요약했다.

뜨거운 관심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 유권자가 이 당선인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까닭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만병통치약을 가진 사람이 아닐뿐더러 그가 내세운 공약과 도덕성에 회의적인 국민도 많다며 제동을 걸어야 했다.

대만은 국회의원 절반 줄였다

한국 정치가 모든 분야에서 대만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다. 대만은 3년 전 국회의원 수를 225명에서 113명으로 줄였다. 민진당과 국민당이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기는 했지만 정쟁을 일삼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크게 해소됐다. 한국 정치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대만 국민은 결국 남의 나라 대선 승자를 모델로 끌어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타이베이를 떠나며 한국 국민의 선택이 올바른 것으로 판명되고, 대만 국민도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되기를 기원했다. 대만에 ‘수출’된 이 당선인이 계속 호평을 받느냐 여부는 그의 국정 수행 성적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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