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희]만약에…

  • 입력 2007년 12월 14일 03시 02분


지난 학기 1학년 교양영어 수업에서 ‘만약에’라는 가정법 종속절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문장연습을 시키기 위해 “만약에 1000만 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중고차를 사겠어요” “여름에 배낭여행으로 세계일주를 하겠어요” “컴퓨터를 새로 사겠어요” 등등 다양한 대답을 했다. 그러더니 몇몇 학생이 “만약에 그렇게 하고도 돈이 남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하고도 돈이 남으면?’ 난 이 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길게 잔소리를 했다. “생각해 봐라, 순서가 바뀌지 않았는가. 상상 속의 돈이라 해도 그렇지, 세계일주를 하거나 차를 사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그 돈을 주겠다’고 말할 수는 없나. 돈이 남을 때만 남을 돕겠다고 한다면 자기만족을 위해 불쌍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학생들이 좀 민망한 표정을 짓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의협심에 불타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해 댔다. “그럼 만약에 돈이 남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겠다는 뜻이 아닌가….” 영어시간이 마치 도덕시간이 된 것 같아 좀 어쭙잖았지만, 그래도 영어로 말하고 있으니 인성교육까지 겸비한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들떠 열심히 떠들어 댔다.

상황 회피 위한 조건부 약속

그런데 어제 오후였다. 퇴근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다가 나는 다시 그 노인을 보았다. 두어 달 전부터 아주 깡마르고 등이 굽은 노인이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이집 저집의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가게 앞에서 종이상자를 모으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날씨가 추운데도 노인은 여느 때처럼 얇은 잠바와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맨발에 검은색 슬리퍼만 신은 채였다. 손수레에는 겨우 종이상자 서너 개만 보였다.

노인이 종이상자를 줍기 위해 깡마른 등을 굽히는데 허리에 맨살이 드러났다. 갑자기 안된 마음에 나는 생각했다. ‘만약에 우리 집에 온다면 따뜻한 옷이라도 드리련만….’

‘만약에…’ 그랬다. 알량한 동정을 베풀면서 나는 ‘만약에 우리 집에 온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었다.

현실과 다른 상상 속의 상황에서 어떤 제안을 할 경우에 우리는 ‘만약에’라는 조건을 단다. ‘만약에 내가 돈이 많다면…’이라든가, ‘만약에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슈퍼 파워가 있다면’ 등 화자의 자발적이고 호의적 의도가 포함돼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는 ‘조건부’ 약속으로서 상황이 적합할 때에만 실행하겠다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요새 눈만 뜨면 듣는 말이 ‘만약에’이다.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만약에 내가 정권을 이어받는다면….’ 젊었을 때 남대문시장에서 옷 장사를 했다느니, 환경미화원으로 새벽에 나가 길청소를 했다느니, 뒤도 안 보고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가난하고 핍박했던 시절을 다시 들먹이면서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들을 위해서, 힘없고 아픈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그런데 이 ‘만약에’라는 안전장치가 조금 마음에 걸린다. 이제껏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상관없다고 여기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만약에 대통령이 된다면’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학생들이 ‘만약에 돈이 남으면’이나 내가 ‘만약에 저 불쌍한 사람이 우리 집에 온다면’이라고 조건을 다는 것과 크게 다르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잘났든 못났든 다 거기서 거기, 50 정도인데, 조금 부족한 사람은 49, 조금 더 잘난 사람은 51인 것뿐이라고. 그래서 조금 잘난 사람, 조금 못난 사람 둘이 서로 합해서 100이 되는 거라고. 대선에 나온 사람들도 그다지 잘날 것도 또 그다지 못날 것도 없는 50짜리 사람들인데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힘으로 나를 51로 만들어 준다면…”이라고 안타깝게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속고 속더라도 희망을 갖자

저들 중에 누가 51이 될지 모르지만 조금은 부족하고 힘없는 49의 자리에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만약에’라는 조건이 붙더라도 선의 자체가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랴. 속고 또 속아도 다시 한 번, ‘만약에 정말 이번에는 낮은 곳에 머무는 좋은 대통령을 갖는다면…’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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