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주성]은행, 좋은 주인 나쁜 주인

  • 입력 2007년 11월 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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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金産)분리 정책이 뜻밖의 대선 쟁점이 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인 데다 분배나 복지처럼 이념이 섞인 주제가 아닌데도 그렇다. 은행 소유 규제에 대해서는 이명박 후보의 ‘완화론’과 정동영 후보의 ‘유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뭔가 허전하다. 특히 정책을 바꾸자는 측의 논리가 빈약하다. 요즘은 재벌이 현금을 쌓아 놓고 있으니 은행을 소유해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가설에 불과하다.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 지분이 높아지는 것은 우려할 만하지만 이를 구실로 재벌이 은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듣기 민망한 수준이다. 기존 정책을 바꾸려면 그것이 왜 생겼고 수정할 요인은 뭔지를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정책수단의 적합성을 가늠할 기준, 즉 정책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은행은 저축된 자본을 기업 투자로 이어 주는 중개 역할을 한다.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해 대출 순위를 정하고 사후 감시를 한다. 그런데 평가 대상인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면 자원 배분이 왜곡되기 쉽다. 또 부실 대출로 은행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 이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친다. 이것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기본 이유다.

금산분리 완화-유지 팽팽히 맞서

반면 기업과 은행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경제에 이득이 되는 측면도 있다. 은행이 제 구실을 하려면 기업 정보가 충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거래 관계가 중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과 은행이 상호 지분을 보유하거나 주거래은행을 아예 기업군의 계열사로 편입하는 국제 사례도 있다. 기업으로선 위험을 감당해 줄 든든한 후원자가 있으니 장기적 안목의 투자를 할 수 있다. 물론 투자가 실패하면 기업과 은행이 함께 망하는 위험이 뒤따른다.

대부분의 제도가 그렇듯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금산분리에 관한 해법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정부가 사실상 은행의 주인이었다. 산업정책의 틀 안에서 재벌들은 위험부담 없이 장기투자에 나설 수 있었고 이는 고도성장이라는 이득과 은행 부실 및 투자 비효율이라는 비용을 함께 낳았다. 정부가 주인인 은행을 재벌이 넘볼 여지가 크지 않았고, 시장논리에 근거한 은행 소유 논쟁도 무의미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계기로 은행의 민영화가 촉진되고 정부의 개입이 축소됐으며 그 결과 정부를 등에 업은 기업대출은 거의 사라졌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크게 늘었고 시장경쟁의 논리가 금융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자원 배분의 효율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업투자는 크게 줄었고 이는 성장잠재력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부라는 위험 흡수장치를 대체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재벌의 은행 소유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재벌들이 현금을 쌓아 놓고 있는 것은 투자위험과 경영권 전쟁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은행을 주면 그룹 차원의 위험 분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과 유사한 효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초래되는 비효율과 비재벌기업과의 불평등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외국인 주주가 국내 은행들의 주인 노릇을 하며 단기 수익만 추구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도 없다. 은행은 일종의 ‘전략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은행 소유 문제는 성장잠재력과 직결되는 어려운 과제다. 재벌에 은행을 주고 관리 감독만 잘하면 된다는 주장이나 기업투자 부진에 대한 해법도 없이 옛날 제도를 붙들고 있자는 생각이나 안일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4%인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상한을 적당히 늘리는 식의 편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발전적 개선을 위해서는 기업의 장기적 모험투자를 늘리게 하되 자원 배분의 비효율은 최소화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사안별 각개격파를 시도해야 한다.

적당한 타협 경제에 부담줄 뿐

금산분리 문제와는 별도로 외국인 지배주주에 대한 합리적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 기업의 투자위험이나 경영권 문제 역시 나름의 해법이 필요하다. 그 다음 은행의 주인 문제를 생각하자. 금융 전업 그룹도 가능할 것이다. 전문경영인에 대한 시장과 정부의 감시 수준이 높다면 우리 같은 개미들도 은행 주인이 못 될 이유가 없다. 다만 공허한 논쟁 끝에 적당한 타협으로 경제에 부담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주성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경제학 jjun@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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