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버핏 신드롬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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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77)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투자자’라는 개인 자격으로 방한해 고작 6시간 머물렀지만 거의 국빈 대접을 받았다. 듣던 대로 그는 소탈하고 검소했다. 큰 부자가 공항에서 직접 짐을 찾고 점심으로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먹었다. 지금 지갑에 얼마 있느냐는 질문에 곧바로 600달러(약 55만 원)를 꺼내 세어 보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버핏의 방한은 주가도 움직였다. ‘투자한 적이 있다’고만 했는데도 기아자동차는 6년 만에 상한가를 기록했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이틀간 각각94.70포인트(4.90%)와 17.27포인트(2.21%) 올랐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해 시가총액은 49조8000여억 원이나 불었다. 고유가 등 각종 악재에도 코스피지수가 2,000을 재탈환한 데는 “한국 증시, 10년 이상 간다”는 버핏의 낙관론도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버핏의 한마디에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내재가치가 높은 우량 주식에 투자해 장기 보유하는’ 버핏 식 ‘가치투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버핏도 한국을 사랑한다지만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도 뒤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나온 버핏 관련 책이 30여 종에 이르고 만화 자서전까지 있다. 한국인들의 이런 애정에는 ‘돈 많은 현자(賢者)’에 대한 우러름이 깔려 있다. 한국에는 존경받는 부자가 없다는 열등감의 산물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이든 한국이든 부자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부지런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부자라는 것은 그 자체로 남을 돕는다.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준다. 한국 기업가들의 성공 신화에도 버핏 못지않은 감동이 숨어 있다.

▷한국의 부자 중에도 버핏처럼 좋은 곳에 돈을 쓰는 청부(淸富)가 많다. 기부 안 한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라 미국처럼 ‘상속이 손해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때로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 특히 외국인이 한마디 하면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다. 외국의 부자만 존경의 눈으로 볼 일이 아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이미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을 가진 글로벌 경제 강국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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