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태원]‘아프간’ 자충수에 걸린 ‘소말리아’ 해법

  • 입력 2007년 10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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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냐 몸바사를 떠나 예멘으로 향하던 원양어선 마부노호가 15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해안에서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 납치된 선원은 24명이고 한국인은 4명이다.”

외교통상부는 소말리아 피랍사태가 발생한 다음 날인 5월 16일 이런 내용을 브리핑 했다. 이후 협상 진전 사항에 대한 공개 없이 미해결 상태로 154일이 지났다.

외교부가 이 사건을 공론화하지 않는 논리는 간단하다. 언론에 부각돼 국민적 관심사항이 되면 무장단체가 더 많은 몸값을 요구할 것이므로 ‘조용히’ 처리해야 인질 석방이 빨라진다는 것.

하지만 피랍 선원 가족들의 인내와 언론의 의도적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해외에서 발생한 한국인 피랍사건 가운데 최장 기간 억류된 사례가 되고 말았다.

참다못한 마부노호 선원 가족들은 15일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 “아프가니스탄에서 했던 정도만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23명이 피랍되자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의 적극 개입으로 43일 만에 사태를 해결했던 것을 꼬집은 것이다.

선원 가족들은 정부가 아프간 인질에 대해 몸값을 지불했다는 설(說)을 접하고 더욱 분노하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일요판은 14일 탈레반 대원 3명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 인질 12명을 풀어 줬을 때 700만 달러를, 나머지 돈은 나머지 인질을 풀어 준 8월 31일 전달됐다”며 “1000만 달러의 몸값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소말리아 사태의 경우 선주(船主)와 테러집단이 선원들의 몸값으로 100만 달러를 약간 넘는 금액에 합의했지만 정부는 “몸값은 선주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1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분명한 것은 국제납치단체들이 납치한 국민에 대해 정부가 몸값을 지불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한국 사람 납치해서 한국 정부에서 돈 받고 풀어 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원칙은 지켜질 때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피랍 선원 가족들이 아프간 사태 때 보여 준 정부의 태도를 보며 ‘형평성’을 지적하는 것은 정부가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지 않은 탓에 벌어진 자업자득이다.

하태원 정치부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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