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女性의 품격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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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자기관리 서적을 사 본 여성 독자가 전년보다 4배나 늘었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는 전문직 여성들의 성공담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여성 일반을 겨냥한 생존술이 인기다. ‘여우가 되라’ ‘나쁜 여자가 되라’고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책도 많다. 이런 선동에 지친 여성들을 겨냥해 요즘엔 ‘그냥 생긴 대로, 킹콩처럼 살라’는 킹콩 페미니즘까지 나왔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영사를 지냈고 현재는 쇼와(昭和)여자대 학장으로 있는 반도 마리코(坂東眞理子) 씨가 쓴 ‘여성의 품격(女性の品格)’은 사뭇 다르다. 여성까지 남성처럼 돈과 권력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전통적 여성상에 구애될 필요는 없지만 거칠게 행동하고 저속하고 나쁜 말을 쓰거나 약자를 괴롭히지 말자고 권유한다.

▷현대 여성을 위한 새로운 도덕을 주창하는 저자는 몸가짐부터 마음자세까지 66가지 충고를 한다. ‘유행을 따르지 말라’ ‘육체의 아름다움을 노출하지 말라’ ‘고민을 깡그리 고백하지 말라’를 비롯해 ‘꽃 이름을 외우라’ 같은 것도 있다. 겸손과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조언에 ‘경험 많은 어른의 충고’라는 호평도 있고 ‘시시한 여성을 대량생산하려는 그렇고 그런 처세서’(시오노 나나미)라는 혹평도 있다. 어쨌든 지난해 10월 발간 후 160만 부나 팔렸다니 일본은 작년 최대의 베스트셀러 ‘국가의 품격’에 이어 요즘 ‘품격 모색’이 한창인 셈이다.

▷진정한 여자의 품격은 무엇일까. 가깝게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88) 씨가 떠오른다. 외모는 평범한 서양 할머니이지만 온화한 표정을 뚫고 나오는 성찰의 말들은 오랜 세월 자신과 깊이 대화하며 인간을 살펴 온 사람들만이 갖는 품격을 보여 줬다. 수상 소식을 들은 그는 덤덤하게 “그들(노벨상위원회)은 ‘언젠가는 그 여자에게 상을 줘야 할 텐데’라며 걱정했을 것이다. 내가 흥분하고 기뻐할 필요는 없다”고 반응했다 한다. 여자든 남자든 품격이란 것은 인생과 세계를 치열하게 대면하되 여유와 절제, 인내를 잃지 않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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