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신뢰 인프라

  • 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신정아, 이지영, 심형래, 이창하, 김옥랑…. 학력 위조로 전국을 시끄럽게 만든 유명인들이다. 승승장구하던 유명 인사가 가짜 학위가 드러나 하루아침에 추락하는가 하면 ‘학벌 사회의 폐해’ 또는 ‘중요한 건 실력’이라는 너그러운 반응도 나온다. 20, 30대 대상의 설문조사에서는 ‘학력을 위조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는 응답이 20% 가까이 됐다.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 실력 없이 학벌만으로 승진하는 사람을 볼 때 특히 그런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세관은 올해 1∼6월 가짜 졸업증 성적증명서 비자 등 위조문서 70점을 적발했다. 과거엔 신분증 위조가 많았지만 작년부터는 학력 관련 위조문서가 절반을 넘어섰다. 위조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실력 있는 업자를 찾는다’고 글을 띄우면 “무엇이든 100% 똑같이 만들어 준다”며 비용과 연락 방법을 알려 주는 업자가 많다고 한다. 중국 베이징의 ‘위조업소’들은 세계 각국의 각종 가짜 증명서를 ‘주문 생산’하느라 성업 중이다.

▷그리스 최고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신뢰를 받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더 큰 찬사’라고 했다. 한국은 아쉽게도 그런 찬사를 받기에는 신뢰 수준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학계, 언론, 국회 등 제도기관에 대한 신뢰 점수는 미국에 비해 16%나 낮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점수가 떨어진다. ‘믿을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포괄적인 질문에 한국은 10점 만점 중 4.6점을 받는 데 그쳤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도 ‘신뢰’(37%)보다는 ‘조심’(63%)이 많았다.

▷고속도로, 공항, 항구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면 고비용을 치르게 된다.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규범이나 시민의식도 경제활동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다. 지식 분야에서 가짜를 가려내 퇴출시켜야 신뢰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다. 검찰은 올해 말까지 학위, 자격증, 국내외 인증 등 3개 분야에서 ‘신뢰 인프라 교란사범’ 단속에 나선다. 신고전화는 국번 없이 1301번. 최근 스캔들이 잇따라 터진 문화계와 학계도 ‘짝퉁’ 검증을 검찰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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