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달걀 테러’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코멘트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그제 한나라당의 새 대북(對北)정책을 설명하러 재향군인회에 갔다가 달걀 세례를 받았다. 달걀이 날아가는 장면과 얼굴에 맞는 순간, 깨진 뒤 얼굴을 뒤덮는 모습 등 석 장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정 의원의 얼굴 표정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동안 좌파들에 의해 ‘극우 보수 꼴통’으로 분류돼 왔던 정 의원이 보수단체 회원들한테서 봉변을 당했다는 점이 역설적이고 시사적이다.

▷정 의원의 족적(足跡)을 곱지 않은 눈으로 봐 왔던 사람들은 이번 일을 고소하게 여길지 모른다. 그는 오랜 공안검사 생활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대공(對共)국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뒤 정권과 상대 당(黨)에 대한 저격수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비판자들이 “마구 설치더니 꼴좋다”는 반응을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달걀 세례는 온당한 의사표시 방법이 아니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 평화통일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당의 새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새 정책은 상호주의 후퇴, 대대적인 대북 경제지원, 여권(與圈)이 추진 중인 제2차 남북정상회담 지지 등을 골자로 한다. 기존 정책을 뒤집는 수준으로 바꾼 데 대해 포퓰리즘 또는 북풍(北風)에 두려움을 느낀 대선용 정략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보수단체의 달걀 세례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넘는 과잉 행위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달걀 세례가 인명살상(人命殺傷)을 노린 것이 아니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시위방법이라는 이유로 너그럽게 봐 주기도 곤란하다. 명예심에 상처를 주고 다수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달걀을 던지는 것은 돌이나 칼보다는 덜 폭력적일지라도 결국은 상대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협박이고 폭력이며 테러다. 민주주의의 적(敵)인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더 심각한 테러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