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상돈]보스턴 글로브의 ‘케리 검증’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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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선 주자 두 사람 사이의 검증을 둘러싼 다툼은 ‘논쟁’을 넘어 ‘전쟁’의 단계에 다다른 것 같다.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이 상대방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한 탓에 당내 경선에 검찰 수사가 큰 변수로 등장했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은 후보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청문을 실시했다. 청문이 통과의례밖에 안 된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청문 자체는 두 사람에게 대단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청문을 했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라서 후보의 과거사에 대한 검증은 검찰 수사에 맡기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자기와 관련된 문제를 검찰이 조사해 주기를 요청하는 일부터 기이한 현상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명예훼손이 형사사건이 아니라서 고소 자체가 불가능한 점을 생각하면 특히 그러하다. 공인(公人)이라는 사람이 자기에 대해 불리한 말만 나오면 고소부터 하는 세태는 분명히 잘못됐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는 언론의 역할이다.

전담 취재팀 구성 샅샅이 훑어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가 잘 보여 주듯이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이 대통령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는 법이다. 2002년 대선 때 언론이 여야 대선후보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탐사 보도를 했더라면 우리나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김대업 씨 사건만 해도 언론은 그의 주장을 실어 나르는 데 그쳤지 허구성과 기만성을 파헤치지는 못했다. 일부 언론은 그의 황당한 주장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5년이 지났지만 언론의 능력과 각오는 별반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언론의 탐사 보도 기능은 전보다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은 툭하면 비판 언론을 상대로 정정 보도를 요청하고 반론을 요구함으로써 기자의 취재 의욕을 위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의한 오보가 아닌 한 명예훼손 책임을 지지 않는 미국과 달리 단순 과실에 의한 오보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우리나라 기자의 취재활동 반경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온 존 케리 상원의원을 발가벗긴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2002년 말 보스턴 글로브는 차기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유력한 매사추세츠 주 출신의 케리 상원의원을 철저하게 검증한다는 계획을 편집국 차원에서 세웠다.

이미 상원의원 4선에 성공한 케리 의원에 대해 더 검증할 내용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반론이 있었다. 그러나 편집국장은 유권자는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으며 케리 의원을 가장 잘 아는 보스턴 글로브가 그를 검증하는 데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케리 의원을 26년째 취재해 온 기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담 취재팀은 케리 의원의 조상부터 그의 출생과 성장, 군 복무, 결혼과 이혼 및 재혼, 상원의원으로서의 활동 등 모든 것을 샅샅이 훑었다.

케리 의원은 2003년 한 해 동안 보스턴 글로브에 연재된 자신에 대한 기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부계(父系)가 유대인이며, 할아버지가 보스턴 시내 중심가 건물에서 권총 자살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케리 의원을 취재한 기자들은 그가 베트남전쟁에 참가해 받은 무공훈장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상원의원으로서 케리 의원이 일관성이 없음을 소상하게 밝혀냈다. 1년 동안 계속된 기사는 2004년 봄에 단행본으로 출간돼 케리 의원을 악몽처럼 괴롭혔다. 베트남전에 초급 해군장교로 참전한 케리 의원이 취했던 석연치 못한 행동은 대선에서 악재로 작용했다.

“대선후보 검증은 언론의 사명”

보스턴 글로브는 진보성향의 친(親)민주당 신문이다. 그럼에도 보스턴 글로브는 민주당후보로 나설 케리 의원을 검증하는 일이 언론의 사명이며, 자신들이 그 역할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언론은 여야 대선주자에 대한 검증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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