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병훈]‘준비 안 된 대통령’ 걱정된다

  • 입력 2007년 7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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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만 안 봐도 살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럴까. 과연 내년에는 우리 국민이 좋은 세월을 볼 수 있을까. 불행한 일이지만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때문에 나라살림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노무현 씨는 2002년 4월 27일 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되었다.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야말로 허겁지겁 청와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찬찬히 정책 구상을 할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이 노 대통령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올해는 상황이 훨씬 더 고약하다. 각 당의 대통령후보가 예년에 비해 턱없이 늦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가장 좋다는 한나라당도 8월 19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2002년보다 석 달 이상 늦다. ‘선진 한국’을 주문처럼 외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들 시간이 없다. 그런 처지에 유력한 후보라는 사람들이 치졸한 인신공격에 세월을 다 보내고 있다.

각당 대선후보 턱없이 늦게 결정

언필칭 ‘여권’이라는 집단의 사정은 참혹하다 못해 분노까지 자아낸다. 현재로는 이르면 10월 초, 대통령선거를 불과 두 달 남겨 두고 집권 세력의 대통령후보가 확정될 모양이다. 그것도 물론 최대 희망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정치 세력이 모여 다음 달 5일 대통합신당 창당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20일 만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는데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주제에 비전과 희망이니 미래창조니 그럴듯한 말은 빼놓지 않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 대한민국이 이름도 모를 후진국인가. 그 뻔뻔함에 기가 막힌다.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교장이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둔 시점에 미리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학교 재단이사회는 즉각 새 교장 초빙위원회를 구성해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학생 수 350명밖에 안 되는 일개 고등학교도 새 지도자를 모시기 위해 저렇게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 인구 5000만 명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가.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0%는 차기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제1과제로 경제 성장을 꼽는다. 실업 해소와 사회복지가 뒤를 잇는다. 어느 젊고 유능한 경제학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해 수천 쪽에 이르는 문건을 읽었다. 그러고 나서도 여전히 FTA를 하는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고 실토했다. 전 국민을 들끓게 만드는 교육문제에 대해 누가 속 시원한 정답을 낼 수 있겠는가. 하나같이 어려운 과제다. 치밀한 준비 없이 막연하게 대처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물론 대통령에게는 참모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도 상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해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는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더니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앙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또 다른 전직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달콤한 말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의 임기 중에 자식이 둘이나 구속되었다. 측근들도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수신제가(修身齊家)야말로 준비된 대통령의 기본 덕목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훌륭한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의 최종 단계에서 ‘유혹을 이기는 법’을 강조했다. 그만큼 정치인에게는 수양이 중요하다.

인신공격 대신 정책구상 힘써야

지금 대통령후보라는 사람들은 나라를 이끌 비전을 마련하는 데 얼마나 시간을 쓰고 있는가. 자신은 물론 측근, 특히 자리 욕심에 몰려드는 ‘정권 투기꾼’을 엄정히 다스릴 방도를 마련했는가. 다행히 대선후보는 저마다 타고난 건강을 자랑한다. 첫새벽 맑은 정신에는 수신에 정성을 쏟고, 촌음을 다투어서라도 하루 두어 시간 정도는 정책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공부 안 하고 돌아다니는 후보는 ‘봉숭아학당’에라도 보내야 할 판이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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