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한국 수학, 미국 수학

  • 입력 2007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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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기자의 쌍둥이 딸이 미국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에선 그동안 치러진 과학, 지리, 수학 등 3개 과목 시험에서 과목별로 전체 10등 안에 든 학생들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대견하게도 두 딸이 수학 과목에서 상을 받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담임교사들을 만났을 때 더욱 흐뭇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전 실시된 뉴저지 주(州) 학력평가 시험에서 두 딸이 모두 수학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 담임교사는 “‘수학 천재’ 딸을 둔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학 천재 딸을 둔 부모의 자부심은 불과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얼마 후 두 딸에게 한국에서 같은 학년(6학년)이 공부하는 수학 문제집을 구해다 풀어 보게 했더니 문제가 어려워지거나 계산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헉헉댔다.

미국의 ‘수학 천재’가 한국 수학의 높은 벽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난도가 미국 초등학교 수학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미국에선 중학교에서 배우는 방정식을 활용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도 많았다. ‘정말 초등학교 6학년 수학이 맞아?’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서는 이미 관행이 된 선행학습도 시키지 않고 학원도 보내지 않은 대가가 너무 컸다. 그사이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한 동년배와의 수학 실력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것이다.

한국 초중고교생들의 수학 실력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출신 학생들이 미국 학교에서 복잡한 계산을 척척 해내면 눈이 둥그레지는 미국 학생이나 교사가 많다. 한국 학생들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기계적인 문제풀이 훈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미국 학교에서 수학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낀다.

하지만 이 같은 한국식 수학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유효한지에 대해선 논란도 많다. 이를테면 자신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 중요한 대학에선 한국식 수학 실력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 대학원에 입학한 한 유학생이 인터넷에 띄운 글을 얼마 전에 읽고 공감했다.

그는 “대학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미국 동료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내가 개인교사 역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이들은 놀라울 만큼 빨리 따라왔다. 어느 순간 미국 학생들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수학 실력에서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한국식 수학 교육이 미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등 대학입시까지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뉴욕, 뉴저지 주 일대의 한국식 수학학원에는 미국 학생들도 많이 등록한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한 미국인 학부모는 기자에게 “한국 학부모의 추천을 받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위해 모 수학학습지를 구독하고 있다. 계산능력 향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뉴저지 주 리지우드에서는 몇 년 전 혁명적인 방식의 창의적인 수학 교육을 도입했던 교육감이 학부모들에게서 “이상도 좋지만 수학의 기본 실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집단 항의를 받고 결국 물러난 일이 있었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다. 나아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변수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의 차이를 보면서 과연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는 게 바람직할까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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