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대장놀이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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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에서 대장놀이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 놀이가 마냥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거다. 가위바위보로 대장을 결정하는 ‘민주적인 대장놀이’라도 대장이 되지 못하면 괜히 속이 상한다. 늘 자기가 대장을 해야 한다고 우기는 힘센 아이라도 만나게 되면 상황은 정말 안 좋아진다. 대장에게 차려, 경례는 물론이고 딱지 바치기, 책가방 들어 주기 등 ‘부하’가 돼야 한다. 물론 대장이야 한없이 으스댈 수 있어 좋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의 대북(對北) 비밀접촉을 주선한 권오홍 씨가 어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안 씨가 북과 접촉한 목적은 우리끼리 ‘대장놀이’라고 부르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것이었고,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특사 파견이 논의 대상이었다”고 털어놨다. 놀이의 ‘대장’인 노 대통령도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을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상세히 보고받았다고 권 씨는 말했다.

▷안 씨는 이 정권 출범 직후 “집권당 사무총장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지만 2003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지난해 사면 복권된 뒤 어떤 공직도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아무 권한도 책임도 없는 사람이다. 권 씨의 주장대로라면 그런 사람에게 나라의 미래를 바꿔 놓을지도 모를 남북정상회담의 길 닦기를 맡긴 셈이다. 북이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안 씨를 원해서였다고 하지만 그건 국민에게 국정을 보고할 필요가 없는 김정일 독재체제의 방식일 뿐이다. 정상회담을 (골목)대장놀이로 불렀으니 이런 지적 자체가 부질없겠지만 그래도 입맛은 쓰다.

▷더구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그제 “이 사안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라는 말로 안 씨를 두둔한 것을 보면 혹시 이 장관도 정상회담을 대장놀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은 안 씨의 대북 접촉과정을 ‘동네 정치’라고 조롱했지만 이건 ‘동네 정치’만도 못하다. 도중에 드러나서 다행이지 만약 ‘대장놀음’ 수준에서 뭔가 합의라도 이뤄졌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또 무슨 봉 노릇을 하게 됐을지 모른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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