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균형-분배 코드가 키운 성장 침체와 양극화

  • 입력 2007년 2월 7일 23시 19분


임기 1년 남은 정부가 한두 주 걸러 내놓는 휘황찬란한 정책에 국민은 현기증이 난다. 비전 2030, 국민건강 투자전략, 군 복무기간 단축을 포함하는 인적자원 활용 ‘2+5’처럼 10∼20년 추진될 매머드급 정책이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나 실행계획 없이 줄줄이 발표되고 있다. 눈부신 비전에 국민은 헛배가 부를 지경이다. 차기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도 걱정스럽다.

어제 발표한 2단계 국토균형발전대책도 부랴부랴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2단계 대책은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고 고용보조금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1단계 균형발전대책에 비해 방향은 제대로 잡은 편이다. 하지만 법인세 세수 감소 대응책과 감면 방법 등에서 관계부처 간에 의견 조정이 완료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여당의 지리멸렬로 관련 법률 개정은 언제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다.

이 정부는 시종 균형발전에 매달리고 있지만 ‘국내 균형’ 집착이 빚은 결과는 양극화의 심화와 ‘대외적 낙후’다. 수도권에 공장을 못 짓게 하면 기업은 지방이 아니라 해외로 간다. 하이닉스는 이천 공장 증설의 길이 막히자 중국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로 투자액 13조5000억 원과 일자리 6600개를 중국에 뺏길 판이다. 일자리가 외국으로 다 달아나면 ‘2+5’의 실현에 필요한 수많은 일자리는 어디서 만들어 낼 것인가.

규제의 내용도 기가 막힌다. 하이닉스 이천 공장의 경우 처음에는 균형발전 때문에 안 된다더니 나중에는 구리의 수질오염 문제를 들고 나왔다. ‘배출량과 관계없이 구리는 안 된다’는 식의 ‘무식한 규제’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혀를 찬다.

분양가 규제, 분양원가 공개 등을 골자로 하는 1·11 부동산대책에서 보듯 반(反)시장적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S&P는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미뤄졌으며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주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1·31대책에서 밝힌 비축용 임대아파트 50만 채 건설계획도 ‘날림 정책’의 전형적인 예다. 정부가 밝혔던 건설원가, 임대보증금 및 월 임대료, 10년 뒤 주택가격, 공공펀드 수익률 등이 현실과 동떨어져 사업성에 대해 정부 관계자조차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정교한 계획 없이 서둘러 정책을 발표한 뒤 세부계획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여기저기서 구멍이 난다.

구호만 있고 수단은 없는 무책임과 무능

계획 자체가 무모하고 현실 정합성이 없거나, 충분한 준비 없이 발표해 뒷감당이 안 된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는 작년 3·30 부동산대책에서 “중산층의 임대주택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30∼50평형대 임대아파트를 6300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채도 매입하지 않았다. 올해 예산도 마련하지 않아 사실상 사업이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중심국가 계획, 7% 성장 달성, 250만 개 일자리 창출, 기업규제 전면 재검토, 교육재정 국내총생산(GDP)의 6% 확충, 학교자율성 확대 및 특성화고교 육성, 학생선발방식 대학 자율 위임, 농어업예산 10% 확보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다.

부자와 중산층은 소득 증가세를 3배나 앞지르는 세금 폭탄으로 괴롭고, 언필칭 서민의 정부에서 소득 및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성장과 고용뿐 아니라 분배와 복지에서도 내세울 게 거의 없다. 균형 깃발을 열심히 흔들어 돌아온 것은 저성장의 구조화, 양극화의 심화, 근로 유인 상실, 복지기대심리 확대, 국가채무 누적이다. 균형을 잃은 균형발전정책으로 한국병(病)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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