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종섭]조광조의 열정, 제갈량의 가르침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코멘트
정해년 새해에 심곡서원(深谷書院)을 찾아가는 길은 겨울 날씨로 차갑고 매서웠다. 경기 용인시 수지마을 고층 아파트단지 사이로 난 정암로를 따라가면 심곡서원이 나온다. 한적한 홍살문에 조그만 강당인 일조당(日照堂)과 위패를 모신 사우(祠宇)가 전부인 조촐한 심곡서원은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큰 서원들에 비하면 주위는 보잘것없고, 선생이 심은 느티나무만이 추운 겨울바람을 버티며 500년 역사를 안고 서 있었다.

조광조. 왕도정치와 개혁정치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은 그는 조선 중종 때 출사하여 사림의 영수로 국가개혁을 주도한 지 4년 만인 37세 나이에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사약을 받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고자 낡은 제도와 훈구관료세력을 혁파하고,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소인배들과 간신들을 물리쳐 의리(義理)를 바로 세우고, 능력 있는 현인재사들을 등용하게 했으나 훈구세력의 모함과 역공에 말려 죽음의 비운을 맞았다. 그가 신원(伸寃)된 것은 선조 때이고, 사액(賜額)을 받은 것은 사후 130년이 지난 효종 때였다. 그가 역적으로 낙인찍혀 있었던 그 ‘잃어버린 시간’ 동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순진한 백성들만 죽어 나갔다.

정암의 恨서린 심곡서원

새해 들어 그를 다시 찾은 것은 민주화 이후 15년 남짓의 그 중요한 시기에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허송세월한 이 나라의 방황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 아쉬웠기 때문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사회 기풍을 새롭게 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개혁을 체계 있게 추진해야 할 시기에 우리는 낡은 패러다임과 권력투쟁으로 허송세월한 것이다.

미래 한국의 비전, 개혁의 목표, 방법, 추진력, 국민 통합과 설득 과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국민 간에 반목과 갈등만 비등하게 만들고 그때그때 설익은 아이디어를 어지럽게 던지다가 학교교육은 죽었고, 국민과 나라의 빚은 산더미같이 늘었으며, 외교에서는 고립무원 지경에 빠졌고, 경제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나라의 안보는 실로 위태로운데 권력을 쥔 자들은 변명하기 바쁘고 책임지는 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 걱정의 단심(丹心)이 사라진 시대에 총체적 모순을 모두 쓸어 낼 힘은 없는가 하며 정암 선생의 뜨거운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제갈량문집’을 펼쳤다. 공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집안을 운영하는 것과 같아,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하며, 근본이 서면 나머지는 스스로 올바르게 된다. 사람과 군주는 모두 하늘에 순응해야 한다. 군주와 신하 간에는 예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군주가 올바르지 않으면 신하가 구부러지며, 군주가 어지러우면 신하는 군주를 치받게 된다. 군주에게는 직언하는 신하(쟁신·諍臣)가 있어 의롭지 못할 때는 직언을 해야 올바름을 따르고 악을 바로잡을 수 있다.’

공명의 가르침은 이어진다.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은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일을 모르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려면 인재 등용에 힘써야 한다. 훌륭한 인재와 충신을 등용하고 간신을 내쫓아야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예부터 인재를 잃고 나라가 위태로워지지 않거나, 인재를 얻고 백성이 편하게 살지 못한 때는 없었다. 인재를 얻어 천하의 인심이 이에 따르면, 의롭지 못하고 못된 자들은 떠나게 된다. 명군은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하며, 나라 일을 함에는 반드시 선후를 분별해야 한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행동을 주시하기 때문에, 군주는 법도에 맞지 않는 말과 도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지도자 바로 보고 제대로 뽑자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1800여 년 전의 가르침이 구구절절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드디어 공명은 이렇게 갈파한다. ‘아랫사람에게 어질고 사랑을 베풀며, 신의로 이웃나라를 감복시키고, 위로는 천문을 알고 가운데로는 인간사를 살피며 아래로는 지리를 식별하며 세상일을 집안일처럼 들여다볼 수 있어야 비로소 천하를 통솔하는 장수(천하지장·天下之將)가 될 수 있다.’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이제는 바로 보고 올바른 대통령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이 나라와 후손들의 운명을 위해서.

정종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 jschong@sn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