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헨리 키신저]이라크 미군, 友軍을 만들라

  • 입력 2007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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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2만 명의 미군을 증파한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결단은 커다란 논쟁을 불러왔다.

이라크연구그룹(ISG)의 보고서는 미군이 처한 곤경을 신랄하게 묘사했다. 이 곤경은 부시 대통령이 거듭 저지른 일의 결과였다. 가치 있는 본래의 목표가 지역적, 문화적 현실과 충돌하고 만 것이다. 국가적 자아정체성이 없는 나라에 조기 총선으로 정치혁명을 불러오려 했지만 결과는 각자의 종파에 따라 투표했을 뿐이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은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중동 국가들에서 소수 시아파와 다수 수니파가 불안정하게 공존해 왔다. 이라크 내전은 두 종파 간 전쟁을 넘어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완전 자치를 획득하려는 이라크 쿠르드족의 움직임은 터키와 이란의 개입을 유도할 수 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이라크의 메디 민병대, 중동 전역의 알 카에다 같은 조직은 국가 안의 국가처럼 행세함으로써 그동안 ‘서방의 가치 아래 잠복해 왔던’ 이슬람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려 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적은 가장 강대한 서방 국가, 즉 미국이다.

미국 국민이 이 지역에서 지게 된 짐을 비로소 깨닫게 되면서 철군 요구는 커져 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철군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미군은 이라크 정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즉, 이란의 영토 팽창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이데올로기가 힘을 합쳐 중동 지역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들이 바로 이 지역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다.

미군이 갑자기 철수한다면 테러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약화시킬 것이고 중동의 허약한 정부들이 테러분자들과 타협하려는 유혹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라크에서 종파 간 갈등을 유발해 대량학살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일련의 외교적 도전들 역시 이라크 주변상황만큼 복잡하다. 이 지역 외교에는 두 가지 원칙이 필수적이다.

먼저 이라크 상황과 이해관계가 직결되면서 미국의 원조에 의지하는 주변국가와 접촉해야 한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이라크 내부의 갈등을 종식시키는 데 조언을 주고 외부의 개입에 맞서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지역 내 라이벌로 떠오르는 시리아, 이란과 동시에 협상을 진행해 이들 국가에 중동 평화질서 구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란에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주어 중동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아니면 시아파 근본주의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비슷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온건파는 1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렵던 화해 조치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이 군사 및 정치적 부담을 기약 없이 홀로 질 수는 없다. 이라크는 국제사회에 의해 복구돼야 하며 다른 국가들은 중동의 평화를 위해 책임을 나눠 질 준비를 해야 한다.

미국의 일부 동맹국과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자신들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미국 혼자 이러한 흐름에 대처하기는 불가능하다. 국제질서를 재건하는 공동의 책임이 조만간 모든 관련국에 부과돼야 할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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