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제라르 뱅데]EU의 내공 키우기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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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에는 연초부터 큰일이 두 가지나 있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새로 EU에 가입한 것과 슬로베니아가 13번째 유로화 사용 국가가 된 일이다. 슬로베니아는 2004년 추가 가입한 10개국 가운데 최초로 유로존에 동참했다. 그동안 슬로베니아는 EU가 제시한 각종 기준을 잘 완수해 사람들이 ‘발칸 반도의 스위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슬로베니아의 뒤를 이을 나라는 발트 3국, 즉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나라들에는 아직 의문 부호가 붙는다. 헝가리는 한때 강력한 후보였지만 재정 적자가 심해 2010년까지 유로존에 들어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민족주의 성향의 지도자가 집권한 폴란드는 유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EU에 진입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선 자축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불가리아는 특별 휴일을 지정하기도 했다. 이 두 나라에 EU 가입은 ‘공산주의와의 완전한 단절’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지 17년 만에 두 나라는 종교 의식을 치르듯 EU에 가입했다.

하지만 EU에 가입했다고 해서 당장 모든 게 좋아지는 건 아니다. 두 나라는 여전히 EU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두 나라는 EU 전체 인구의 6%를 차지하지만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1%에 그친다. 국민소득도 EU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평균 임금이 200유로에 불과하고 인구의 12%가 90유로 이하의 월급으로 연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EU 가입은 실(失)이 될 수도 있다. 두 나라의 엘리트들이 급여가 좋은 다른 EU 국가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약점은 이뿐이 아니다. 지금까지 국내 문제였던 것도 유럽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게 됐다. 200만 명에 이르는 루마니아의 집시 공동체도, 유럽 기준에 맞지 않는 불가리아의 원자로도 골칫거리다. EU 집행위원회는 불가리아에 하루빨리 사법부를 독립시키라고 강요한다.

긍정적인 모습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안은 두 나라를 보면서 기존의 EU 회원국들이 가지게 되는 생각은 뻔하다. EU를 확대하는 데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EU 내부에선 앞으로 상당 기간 확장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지난번 정상회담 때는 가입 조건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외연을 확대하기에 앞서 내부적으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실제 최근의 EU는 여러 면에서 역동성이 떨어진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유럽 헌법 비준을 거부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새 회원국 가입을 공공연히 반대한다. 노동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했던 영국에서도 여론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이민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늦게 가입한 회원국에서도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폴란드에선 민족주의가 부활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EU 가입에 따른 개혁 과제를 수행하느라 힘들다며 피로감을 호소한다. 심지어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3월 말에는 27개 회원국이 모여 유럽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 기회에 EU는 EU 시민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람들은 세계 질서의 축이 되겠다는 공허한 대외 비전이 아니라 가시적인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EU의 2007년은 내실과 내부 결속을 다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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