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實利의 중국, 失利의 한국

  • 입력 2007년 1월 1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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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국내 신문 방송에는 크게 나지 않은 외신 몇 꼭지가 중국을 거듭 생각하게 만들었다.

80세로 와병 중인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세밑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새해인사를 보냈다는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의 보도가 그 하나다. 미국과 ‘맞짱’ 뜨던 카스트로가 중국 주석과는 직접 통화한 것이 아니고 쿠바 주재 중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니 중국에 ‘몸을 낮춘’ 쿠바가 그려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7년 지구촌의 화두 가운데 하나로 ‘아프리카가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될 것인가’를 꼽았다. FT는 ‘어떤 면에서 아프리카는 이미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대한 약속을 모두 이행한다면 아프리카에 도로 철도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서방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세계 4위, 수출 규모 세계 3위, 구매력 세계 2위, 외환보유액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중국경제가 ‘무착륙 비행’의 고공성장을 계속해, 세계경제가 미국 중국 2극(G2)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럴싸하다. 팍스 아메리카나와 대칭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인 “對미일관계 가장 중요”

그런 중국에서 지난해 말에 보도된 ‘중국 5대 도시민의 세계 인식’도 곱씹어 볼 만하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계열 환추(環球)시보가 중국 후이충(慧聰)국제정보매체연구센터를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중국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양국(兩國)관계’의 상대국(지역)을 두 곳까지 꼽으라고 했더니 미국이 78%로 단연 1위였고 이어 일본(48.7%) 러시아(19.8%) 유럽(13.2%) 아프리카(6.2%) 기타(0.1%) 순이었다. 한국, 북한 또는 한반도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 당국의 대미관계 인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적(敵)으로 볼지라도 중국은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춘 국가전략상 미국에 대해 수세적인 상황을 수용한다.’ 위의 조사결과를 보면 중국 도시민들은 이런 국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인근 관계국’으로는 일본(60.2%) 러시아(51.5%)가 높은 1, 2위였고 뚝 떨어져서 인도(9.7%)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9.4%) 동남아(9.4%) 중앙아시아(8.3%) 몽골(7.7%) 등이 열거됐다. 마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제 발표한 신년사에서 “일본과 중국은 신뢰에 기반한 전략적 호혜관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미일관계는 계속 찰떡궁합이다.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차원의 전략적 대화를 진전시키고 있다. 중국은 지역패권국(覇權國)의 모습을 띠면서도 미국에 몸을 낮춘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북-미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하지만 미국을 감정적으로 긁지는 않는다. 중-일관계도 이미 복원이 시작돼 상호 윈윈의 길을 찾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일에서는 북핵 해결을 위한 다국 공조의 큰 훼방꾼으로 한국 정부를 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미 외교안보 전문가 180명에게 ‘미국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 순위를 물었더니 한국은 5년 뒤 14위, 25년 뒤 25위로 점쳐졌다. 중국은 계속 1위이고 일본은 3위에서 4위로 미조정된다는 관측이다.

민족 외치며 ‘홀로서기’는 환상

한국이 미국과 멀어질수록 중-일은 한국을 가벼이 여길 것이다. 한국이 국제공조를 해쳐 북핵 문제가 안 풀리면 일본의 군사적 대응체제도 강화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베 총리는 신년사에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헌법을 우리 손으로 써야 한다”고 천명했다. 군비(軍備)와 교전권(交戰權)을 부인한 평화헌법의 개정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 대신 중국과 가까워지려 한다고 중국이 비빌 언덕이 돼 줄 리는 없다. 고구려사를 비롯한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도 이미 깊숙이 진행됐다.

우리는 외교의 실리(實利)와 실리(失利) 사이에서 언제까지 방황할 것인가. 국가나 지도자나 자존(自尊)이 필요하지만 자대(自大·스스로 큰 체함)가 지나치면 외로워지기 십상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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