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수출만큼만 하라

  • 입력 2006년 12월 3일 19시 40분


나라 안팎이 온통 어두운 소식뿐이다. 4년 전 이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는 ‘동남아(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명퇴한 남편과 일자리를 못 구한 자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힘겹지 않은 사람이 없는 듯하다.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이럴 때는 간혹 좋은 일이 있어도 내놓고 말하기가 민망하지만 수출 3000억 달러의 의미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올해 수출 실적이 5일께 사상 처음으로 3000억 달러를 넘어선다고 한다. 1964년 1억 달러를 달성한 이후 42년 만에 세계적으로 모두 10개국에 불과한 ‘300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웃도는 나라들이다. 2000억 달러를 넘어선 지 2년 만에 3000억 달러를 돌파해 앞으로 5년 내에 수출 5000억 달러, 무역 1조 달러 시대가 예상되고 있다.

고유가에다 환율 하락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올해 수출 목표를 초과 달성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을 벤치마킹했던 어느 동남아 국가의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는 매년 노사분규에다 임금 인상으로 어려울 텐데 어떻게 그렇게 좋은 차를 싼값에 수출하느냐.” 한국 상품의 경쟁력이 그렇게 높아진 원인을 분석하라는 뜻이다.

과거 한국의 수출은 부녀자들의 머리카락을 모아 만든 가발, 거리에서 모은 은행잎 등 지금은 ‘상품’이랄 수도 없는 것들로부터 시작됐다. 이제는 선박 수출이 세계 1위인 것을 비롯해 반도체(3위) 자동차(5위) 철강(5위) 등 기술이 집약된 상품들로 바뀌었다. 이런 한국 상품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기술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수십억, 수백억 달러어치씩 수출하는 기업도 크게 늘어났다. 예컨대 삼성전자 수출이 올해 처음으로 500억 달러 수준에 이르는 것을 비롯해 100억 달러 이상 수출하는 기업이 4개, 10억 달러 이상 수출하는 기업이 무려 39개사나 된다. 수출의 날 행사 때 상을 받은 휴맥스라는 회사는 셋톱박스라는 상품 하나로 5억 달러가 넘는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1960, 70년대와 80년대까지도 이른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은 유별났다.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달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출진흥회의를 열어 실적을 점검했고, 담당자들은 실적을 맞추느라 밀어내기 수출을 독려하기도 했다. 저리의 수출 금융 지원으로 특혜 수출 논란을 빚기도 했고 심지어는 돌멩이 수출이라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한두 번인가 비슷한 회의가 열린 적이 있지만 이미 오래전에 그런 행사는 사라졌다. 수출업체에 대한 금융 세제상의 지원은 없어진 지 오래다. 저금리시대라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무역 상대국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특혜 지원은 하려야 할 수도 없다. 정부의 지원이나 독려가 없이도, 아니 정부가 발목을 잡아도 수출기업들이 이를 극복하고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수출 말고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국정 전반이 어지럽다. 수년째 투자가 부진한데도 정부는 규제를 붙들고 놓지 않는가 하면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아파트 값이 폭등하고 있으니 ‘정책이 주범’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나오는 정책마다 실패하는 이유는 과잉 의욕과 지나친 간섭 탓이다. 국민과 기업은 이미 정부 지원이나 특혜에 기댈 수준을 넘어섰는데 섣부른 정책으로 국민과 기업의 수준을 오히려 끌어내리고 있다. 어설픈 정책으로 일을 망쳐 놓을 바엔 차라리 가만 놔두는 것이 더 낫다. 있는 듯 없는 듯 생색내지 않고 지원하는 수출 정책을 다른 부문에서도 본받을 때가 됐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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