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50기 국수전…지나간 버스

  • 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이창호 9단은 ‘끝내기의 대명사’로 통한다. 얼마나 뛰어났으면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그런데 이창호 이후 신산으로 불리는 기사가 또 한 명 나왔으니, 박영훈 9단이다.

아이들은 덧셈 뺄셈보다 한글을 먼저 익히는데 박 9단은 숫자를 먼저 깨우쳤고 음식점에서도 메뉴의 가격을 더하고 빼는 놀이에 정신을 팔곤 했단다. 끝내기가 곧 계산력이라면 이 9단이나 박 9단은 타고난 재주를 바탕으로 특별한 비결을 터득했을 법한데 이들이 말하는 끝내기의 비결은 의외로 싱겁다. 그저 “끊임없이 집을 세는 것뿐”이란다.

좌중앙 흑대마가 공격의 가시권에서 벗어나면서 실상 바둑도 끝났다. 백은 이후 분주히 실리를 챙기며 집싸움을 벌였으나 버스 지나간 뒤 손 드는 격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신산’이다.

흑 109의 시점에서 집을 세어 보면 흑이 상변 30집에 하변 20집, 모두 50여 집을 확보한 데 비해 백집은 여기저기를 다해도 35집 정도. 흑이 엷기라도 하다면 어떻게 비벼보겠는데 그럴 언덕조차 안 보인다.

나머지 수들은 그저 두어본 데 불과했다. 박 9단은 이창호-이세돌-최철한 9단과 함께 ‘신(新) 4대 천왕’으로 꼽혔다. 현재 기성전과 영남일보배 등 두 개의 국내 타이틀을 차지하고는 있으나 올해 세계대회 성적은 신통치 않다.

4대 천왕 중에서 가장 처지는 분위기인데 국수전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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