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백두산

  • 입력 2006년 8월 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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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한민족의 영산(靈山)’이다. 그러나 한중 접경의 이 산을 중국은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부르면서 ‘중국 것’이라고 해 왔다. 그럴 때마다 육당(六堂)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가 떠오른다. “이마를 스치는 것은 백두산 바람이요, 목을 축이는 것은 백두산 샘물이요, 갈고 심고 거두고 다듬는 것은 백두산 흙이다. 이렇게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고 떼려 해도 떼 낼 수 없는 것이 백두산과 우리의 관계이다.”

▷백두산정계비(定界碑)라는 것이 있었다. 만주족 정권이라 할 청(淸)의 강희제(康熙帝)가 백두산을 조상의 발상지라 하여 제사 지내게 한 것이 17세기 후반이다. 그 무렵부터 삼과 모피 같은 특산물을 둘러싸고 한중 민간인들의 분규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청은 조선을 압박하여 ‘서쪽은 압록강으로, 동쪽은 토문(土門)강으로’ 국경을 획정하는 경계비를 세웠다. 그런데 높이 2.25척의 이 비석을 일제가 없애 버렸다.

▷중국의 ‘창바이산 띄우기’가 재개된 지 오래다. 198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받고, 1986년에는 ‘국가 자연보호구’로 지정했다. 지난해에는 산 관할권을 옌볜(延邊) 자치구에서 지린(吉林) 성 직속으로 바꾸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한다는 목표로 내년에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창바이산 공항’을 착공했고, 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3개를 올해 착공할 예정이다. 곧 순환도로도 낼 것이라고 한다.

▷일련의 작업이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이어져 있다. ‘창바이산’을 티베트 대만의 명산 등과 더불어 ‘중화 10대 명산’으로 지정한 데서도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전략적 관심 지역의 산을 당당히 포함시킨 것은 중국의 주권 영역임을 천명한 것이다. 통일 한국 이후의 고구려 발해 역사에 관한 논란을 선제하려 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백두산 주권을 지켜 내야 할 북한은 힘을 잃고 코너에 몰려 있다. 북한이 ‘빨치산 밀영’ 자랑이나 하고, ‘정일봉’을 치켜세우며 망해 가는 사이, 정작 백두산은 ‘중국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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