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같이 좀 갑시다”

  • 입력 2006년 7월 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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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느닷없이 경찰관이 다가와 “같이 좀 갑시다”라고 ‘임의동행(任意同行)’을 요구했을 때의 공포감과 당혹감 말이다. ‘왜요’라고 물으면 “가 보면 압니다”라는 뻔한 답이 돌아온다. 심리적으로 위축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거절하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고, 또 의심을 살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잘못이 없기에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순순히 따라 나서는 게 우리네 보통사람들이다. 말이 좋아 임의동행이지 강제연행이나 진배없다. 일단 따라가면 이런저런 트집잡이로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그제 대법원은 막무가내식의 임의동행 관행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다시금 내렸다. 이는 ‘인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손지열 대법관)는 경찰관의 임의동행 요구로 경찰서에 갔다가 긴급 체포된 뒤 감시 소홀을 틈타 달아난 혐의(도주죄)로 불구속 기소된 박모(27)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경찰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하에 이뤄진 임의동행은 사실상 강제연행, 즉 불법체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찰관이 임의동행 후 긴급체포 절차를 밟았더라도 불법체포 이후 취해진 조치이므로 긴급체포 또한 위법”이라고 덧붙였다.

▷임의동행의 법률적 의미는 ‘수사기관이 피의자 또는 참고인 등에 대해 검찰청이나 경찰서 등에 함께 가기를 요구하고, 상대방의 승낙을 얻어 연행하는 처분’을 말한다. 임의동행을 요청받으면 승낙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 거부하면 동행을 강요할 수 없다. 그제 대법원은 임의동행에 대해 좀 더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수사관이 동행 요구에 앞서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줬거나, 피의자가 동행 과정에서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이 인정돼야 임의동행의 적법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수사기관은 걱정이 많아졌다. 임의동행 절차를 문제 삼은 것일 뿐인데도 임의동행 자체가 부당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또 국민의 인권의식이 높아져 요즘엔 “제발 같이 좀 가 달라”고 사정하는 판인데, 아무나 임의동행을 거부하면 긴급을 요하는 수사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소연한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하지만 잘못된 임의동행 때문에 고통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 역(逆)발상으로, 과학수사를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수사기관의 나쁜 이미지도 바꿀 수 있다. 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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