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민들레 유전자 전쟁

  • 입력 2006년 7월 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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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가 있을 무렵이다. ‘노아의 방주’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과 뭇짐승들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줄기에 겁을 먹고 산 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홍수의 재앙은 식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식물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발이 땅에 딱 달라붙어 있는 민들레는 더욱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하늘이 뚫린 듯 퍼붓는 장대비에 민들레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하느님, 이 보잘것없는 식물을 살려 주십시오.” 민들레는 애타게 기도했다. 민들레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못한 하느님은 세찬 바람을 보냈다. 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간 민들레 씨는 노아의 방주 지붕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 그리고 홍수가 멈춘 뒤 끝내 싹을 틔워 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이 민들레의 꽃말인가.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제목의 대중가요가 있거니와 민들레는 ‘안질방이꽃’으로 불릴 정도로 몸집이 작지만 홀씨는 반경 40km까지 퍼져나간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뿌리가 땅속 깊이 자라기 때문에 짓밟혀도 잘 죽지 않고 부러지면 줄기에서 젖빛 즙이 나온다. 어린잎으로는 나물을 해 먹기도 하고, 뿌리는 해열제로도 쓰인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해마다 4, 5월이면 하얀 꽃을 피워 내는 민들레는 ‘짓밟혀도 일어서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도 통해 노래나 시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그런데 봄이 되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이 노란색 꽃이 우리의 토종 민들레가 아니라고 한다. 환경부가 ‘토종 민들레의 외래화 경향’에 대해 전북대 연구팀에 조사를 맡겼던 모양이다. 토종 민들레는 번식력이 더 강한 서양 민들레에 강제로 교배당한 뒤 잡종화(雜種花)가 됐다가 이제는 깊은 산골이 아니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땅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강한 유전자만 살아남는 유전자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토종 민들레는 외래종에 밀려나면서도 그 ‘흔적’만은 남겨 놓았다. 외래종 유전자 속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긴 것이다.

▷서양 민들레가 토종을 밀어낸 것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한 번식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태계만큼 ‘정글의 법칙’이 분명한 곳은 없다. 그러나 서양 민들레가 처음부터 우성(優性)은 아니었다. 토종과의 교배를 통해 유전자가 더욱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일종의 ‘잡종 강세’인 셈이다. 가뜩이나 우리 것이 사라져 가는 마당이라 토종 민들레의 퇴장이 아쉽기는 하지만 식물조차 세계화(世界化)의 예외가 아님도 깨닫게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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