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청계천 상인들의 ‘중국産공포’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봄철 황사바람이 심하다. 지난 주말에는 황사 예보가 늦어 무심코 밖에 나갔다가는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날 정도였다. 그런 황사바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중국산 저가 상품이다. 그동안 어렵사리 버텨 오던 중소기업과 도소매 상인들이 중국 상품에 밀려 문을 닫고 있다. 불황까지 겹쳐 한 해에 부도나고 폐업하는 곳이 수만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년 가까이 섬유업을 해 오던 김모(49) 씨는 요즘 사업을 접을 생각을 하고 있다. 주로 청계천 주변의 도소매상들에 제품을 공급해 왔으나 더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도 좋지 않거니와 값싼 중국산 때문에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당장 그만두어야 할 입장이나 그동안 착실하게 이익을 내서 쌓아온 것을 세금으로 한꺼번에 내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문만 열어 놓는다고 한다. 주위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너무 많다고 그는 말한다. ‘몇 년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견디던 사람들이 이제는 두 손 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통계수치도 이런 사정을 잘 보여 준다. 통계청의 사업체 기초통계조사 결과를 보면 도소매업 사업자 수는 2000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전체 사업자 수는 약 300만 개인데 이 중 도소매업이 가장 많다. 2000년 91만 개를 웃돌던 도소매업 사업자 수가 2002년에는 89만 개, 2004년에는 87만 개로 감소했다. 매년 1만 개씩 사업자가 줄어드는 셈이다. 창업하는 사업자 수를 포함시키고도 1만 개씩 줄었으니 섬유 완구 문구류 등 재래산업 분야에서 문 닫는 사업체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2003년 254만 명이던 도소매업 종사자 수는 1년 만에 248만 명으로 감소했다. 불과 1년 만에 약 6만 명이 줄어든 셈이다. 그만큼 고용이 줄고 실업자가 늘어난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백수로 놀고 있고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닌가.

중국 상품의 저가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얼마 전 국내의 대형 할인마트 한 군데는 올해 중국 상품의 수입을 작년보다 4배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제품의 직수입 비중을 전체의 10%까지 늘린다는 것이다. 외국 경제연구소들이 장래에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는 중국 전자업체 하이얼은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을 대폭 할인하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마다 ‘우리 기업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하지만 다음 대통령도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도소매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산업이 이런 처지에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경제계는 이미 여러 차례 정부와 정치권에 건의한 적이 있다.

경제 관료와 정치인들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 정부처럼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는 식으로 경기를 살리지는 않는다’고 동문서답하는 그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중소기업과 상인들을 살려내는 것이 바로 양극화 해소 대책이 아닌가. 이들이 살아나야 고용이 늘고 영세상인들도 활기를 찾게 될 것이다. 오죽했으면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서울시장 예비후보에게 청계천 평화시장 상인들이 “중국의 값싼 의류가 밀려들어 오는 데 대한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하소연했겠는가.

청계천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산 저가 상품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핵심 문제 중의 하나다. 중국 상품과 경쟁할 수 있는 한국 상품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계천 상인들의 호소에는 메아리가 없다. 감성정치 이벤트정치의 바람에 밀리고 월드컵 응원 열기에 묻혀갈 뿐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될까 봐 안타깝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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