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WBC 4강 박수도 좋지만…”

  • 입력 2006년 3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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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16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이긴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김인식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야구대표팀의 선전을 치하했다.

14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쐐기 3점 홈런을 쳐 승리를 이끈 최희섭(LA 다저스)도 경기가 끝난 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서 축하 전화를 받았다.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 특례가 정치권의 빠른 행보로 예상보다 훨씬 빨리 결정되자 선수들의 기쁨은 극에 달했다.

정치권은 국위를 선양한 대표팀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게 과연 다일까.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이번 WBC를 통해 한국 야구는 숨어 있는 저력을 세계 속에 알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선수들의 눈높이와 이들의 선전을 지켜봤던 팬들의 눈높이 역시 그에 비례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표 선수들은 대회 기간 내내 말 그대로 ‘메이저리그급’ 대우를 받았다. 전세기를 이용했고, 별 다섯 개짜리 특급 호텔에 묵었다.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이나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한국 선수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급 호텔처럼 넓고 깨끗한 라커룸과 각종 편의 시설, 그리고 “마치 고급 카펫을 밟는 것 같다”는 천연 잔디까지.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오면 스파이크에 묻은 흙은 털어주는 직원까지 있었다. 8명의 직원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왔다.

김 감독은 “대우가 좋아지니까 그에 맞는 몸가짐과 그 이상의 실력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 우리 선수들이 시범경기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지은 지 수십 년이 된 몇몇 구장에서는 경기를 마친 후 샤워조차 하기 어렵다. 많이 개선되고 있다곤 하지만 팬들이 앉는 의자도, 이용하는 편의 시설도 열악하기만 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정치권은 우리 국민이 얼마나 스포츠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전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선수가 열심히 뛰게 하고 팬들이 안락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 아닐까.

샌디에이고에서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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