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20>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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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지금 우리 대군이 휩쓸고 있기는 하나 아직 이 땅은 서초의 땅이며, 해하의 싸움에서 항왕의 대군이 졌다고는 하나 초나라 군사가 모두 죽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계포와 종리매를 비롯한 항왕의 맹장들과 수많은 항씨 족중(族中)의 장수가 많건 적건 저마다 한 갈래 군사를 거느리고 이 부근을 떠돌고 있고, 어리석은 백성들 가운데는 아직도 항왕을 저희 임금으로 여겨 초군을 돌봐주는 것들이 적잖이 남아 있습니다. 항왕이 진채 안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으면 떠도는 초나라 장졸들도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릴 것이니, 그리되면 언제 다시 그들이 합쳐져 큰 세력을 이룰지 모릅니다.

하지만 궁한 적을 급하게 몰다가 낭패를 당할 수가 있어 함부로 우리 대군을 초군 진채로 밀어 넣을 수도 없습니다. 이에 머리를 맞대고 짜낸 것이 항왕을 속여 스스로 진채를 버리고 달아나게 만드는 계책이었습니다. 이미 초나라 땅이 모두 평정되어, 구원하러 올 군사도 없고 군량을 보내줄 세력도 없다고 믿게 되면, 항왕은 이곳을 버리고 강동으로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사가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이제 항왕은 남아 있는 몇천 명도 온전히 보존한 채 빠져나가기는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바깥에서 구원을 올 군사들은 항왕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돼, 겨우 빠져나간 그 미약한 세력마저 외롭기 짝이 없게 되고 맙니다. 그때에는 그야말로 죄수를 잡으러 다니는 군사 몇천 명만 보내도 항왕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어젯밤 신은 군사들 중에 초나라 노래를 잘하는 군사 수천 명을 골라 초군 진채를 에워싸고 밤 깊도록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만약 새벽에 남쪽으로 치고 나간 것이 항왕이라면 틀림없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초가(楚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항왕은 이미 우리 한군이 초나라 땅을 모두 차지하여 그 장정들을 모두 군사로 끌어냈기 때문에 사방에서 초가가 들린다고 보아 강동으로 돌아가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보기(步騎)를 모두 이끌고는 회남왕의 대군을 뚫고 나갈 자신이 없어, 기마대만을 이끌고 상대가 뜻하지 아니한 곳으로 질풍같이 뛰쳐나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항왕이 이끌고 간 것은 잘돼야 천 기(騎)를 넘지 못할 터이니 정병 몇 만만 뒤쫓게 해도 넉넉합니다. 거기다가 이미 회남왕이 회수(淮水)의 배들을 거두게 하고 모든 나루를 끊어 놓아 항왕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왕의 물음에 장량이 그렇게 길게 대답했다. 한왕은 누구보다 믿는 장량의 말이라 마음을 놓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군막에 그냥 있지는 못했다.

“항우가 오늘날 이 지경에 몰린 것은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 깨끗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까닭이오. 나는 그가 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소. 이제 남은 일이 자방 선생의 말대로 항우의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라면, 이제는 과인이 나서 뒷날 뉘우치는 일이 없도록 마무리하여야겠소.”

그러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태복(太僕)은 수레를 채비하고 장수들은 모두 과인을 뒤따르라. 과인은 이제 대장군의 군막으로 간다!”

장량도 굳이 그런 한왕을 말리지는 않았다. 이에 한왕은 곧 백여 기(騎) 장수를 이끌고 새벽길을 달려 한신의 군막으로 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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