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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3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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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 사건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세 명이었는데 김운용 씨는 자격이 박탈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피고인 전원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강 부장판사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박용성 IOC 위원을 봐주려다 보니 공동 피고인들은 형평 문제 때문에 덕을 봤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후 시작된 두산 계열사 특별세무조사가 최근 한 달 연장됐다. 고위 관계자는 “기업인들은 징역 몇 년 살리는 것보다 기업 뺏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불구속 기소와 집행유예 판결만 보고 흥분하지 말고 특별세무조사 결과를 지켜보라는 의미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광주일고에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다. 강 부장판사의 고교와 대학 선배다. 이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자 19명을 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면서 강 부장판사를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루 전에 있었던 두산 판결에 대한 질책이었다.
이 대법원장은 논란이 일자 “후배에게 그 정도 꾸중도 못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둘만 있는 사석(私席)에서 한 충고도 아니고, 대법원장이 승진 법관들 앞에서 특정 법관의 구체적 판결에 관해 비판한 것은 잘못이다.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는 존재다.
과거 윤관 대법원장 시절에도 화이트칼라 범죄의 양형에 관해 논의된 적이 있다. 윤 대법원장은 직설적(直說的)으로 말하지 않고 법원행정처 주최로 법관 양형(量刑)의 적정화(適正化)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다. 윤 대법원장은 재판 관여 논란을 부르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선거사범에 관한 양형의 기준을 확립했다.
이 대법원장은 공관 만찬 후 신임 법관 임명식 훈시를 했는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를 두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재판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은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글귀가 인쇄된 독일 법원의 판결문을 공개하며 포퓰리즘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두산 사건 판결이 솜방망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마다 ‘장외(場外)재판’이 더욱 뜨거워질 분위기다. 법관의 판결은 여론과 장외재판으로부터도 독립돼야 한다. 두산 사건의 양형에 이 대법원장과 견해를 같이하는 법조인도 많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이 대법원장의 두산 판결 관련 발언은 득(得)보다 실(失)이 많았다.
몇몇 여당 의원이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선출된 권력도 아닌 사람들” 운운하며 사법권 독립을 흔드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3권 분립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법관은 국민이 제정한 헌법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의해 사법권을 부여받았다. ‘국민재판론’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론’에 대한 방어논리로 쓰였다면 탓 잡힐 소지는 없을 것이다.
이 대법원장의 훈시문 말미에는 ‘우리 법원은 법관의 독립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법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사법부를 장악했던 독재 권력이 사라진 이 시대에 사법권 독립의 핵심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는 수상한 바람으로부터 법관의 독립을 지켜 내는 것이 아닐까.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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