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규형]사형제도 폐지와 국민정서

  • 입력 2006년 2월 27일 02시 59분


코멘트
장면 1. 1961년 12월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열린 세기의 재판. ‘국가에 의한 살인’이라는 이유로 사형이 금지된 이스라엘에서 비밀경찰 모사드가 납치한 유대인 학살범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죄목은 반인륜범죄. 다음 해 교수형이 집행됐다.

장면 2.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첫 TV토론. 유명 앵커 버나드 쇼는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부인이 강간당하고 살해돼도 그 범인에 대한 사형을 반대하시렵니까?” 당황한 듀카키스는 답변을 제대로 못했다.

장면 3. 역시 1988년 선거전. 인기도에서 뒤지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조지 부시 측은 매사추세츠 주의 무기수인 흉악범 윌리 호턴이 인도적 취지에서 휴가를 나온 사이 몇 차례의 강간, 무장 강도를 저지른 사실을 간파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듀카키스, 부통령 후보 호턴’이라는 선거 구호를 만들어 사용했다. 듀카키스는 이러한 휴가 제도의 지지자였다. 이 선거전에서 부시는 무난한 승리를 거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범죄에 온정적인 듀카키스’라는 이미지였다.

재작년 정기국회 때 국회의원 상당수가 사형제 폐지안을 발의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 쪽으로 의견을 모아 가고 있다. 여기에 대해 법무부는 작년 중순 사형제 폐지안을 반박하는 검토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21일 법무부는 돌연 사형제 폐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사형폐지법안 심의를 지원해 나갈 방침이라 한다. 하지만 이 사안은 이렇게 쉽게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형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네 가지로 집약되며 필자는 여기에 대해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첫째, ‘인도주의’적 측면. 사형은 잔인한 형벌이지만 사형수들이 범한 행위에 비해 결코 잔인한 것이 아니다. 인류는 예로부터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러한 요구가 무시될 때 과연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인가. 이 경우도 어린이 성추행범의 인권을 옹호하는 사이 죽어 간 11세 허모 양 사건 같은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둘째, 사형제는 범죄 억제 효과가 없다.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 중 하나다. 범죄의 대가에서 죽음이 제외될 때 범죄 억지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위에 언급한 호턴의 경우를 보자. 어차피 종신형을 살고 있고 사형선고가 불가능한 당시의 상황에서 그가 추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어쩌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또한 이 논리는 ‘교도소가 범죄의 온상 역할을 하고 교정 효과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교도소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셋째, 오심의 경우 돌이킬 방법이 없다. 인간의 판단이 완벽할 수 없고 재판관도 인간이기에 오심의 여지는 있다. 그렇다고 사형제를 없애는 것은 마치 잘못된 자동차 운전으로 매년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에 자동차 운행을 금지시키자는 얘기와 비슷하다. 법무부 보고서도 지적하듯이 현행 재판 제도하에서 사형수에 대한 오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넷째,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물론 과거 사형제도가 악용된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적 이유의 사형선고 사례가 1980년 이후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사형제 폐지의 논리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올해 돌연 태도를 바꾼 연유도 수긍이 안 간다.

이에 필자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한다. 흉악범에 의해 아무 이유 없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람의 가족에게 “그 죄수가 처형돼서는 안 된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형제도를 금지하는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의 동포를 무참히 학살하는 데 일조했던 아이히만을 특별법을 통해 사형을 집행한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만약 이 질문들에 대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면 이 문제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