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柳시민 장관의 ‘줄타기’

  • 입력 2006년 2월 1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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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가진 사람의 변신(變身)은 위장(僞裝)과 가면(假面)이다.” 198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군중과 권력’이라는 사회학 연구서를 남긴 영국의 엘리아스 카네티는 권력자의 본질을 이렇게 파악했다. 인간은 변신을 통해서 환경에 적응하고 능력을 키워 가지만 권력자의 변신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본디 권력자는 마음속에 숨긴 다른 사람에 대한 적의(敵意)를 버리지 못하는 속성이 있고, 이 때문에 내면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유시민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우는 ‘놀랍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공무원 스타일’로 외모를 바꾸고, 말과 행동도 하루아침에 ‘평생 공무원’이 됐다. 변신이 아니라 돌변이다. 카네티의 ‘권력자의 변신’이 떠오른 까닭이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뭇매를 맞으면서도 꼬박꼬박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잡티투성이가 아니냐”는 지적에 “정확한 평가”라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에다 국회 정책개발비 횡령 의혹, 서울대 민간인 린치 사건 연루 등 정말 ‘티’가 많긴 했다. 그렇더라도 이처럼 납작 엎드린 것은 그가 장관으로 내정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당 동료 의원들이 ‘싸가지’라며 됨됨이를 지적하자 “(남들이) 듣기 싫은 소리를 싸가지 없이 많이 했다. 잘하면 좋겠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게 안 된다”고 내질렀던 그였다.

국민 65%가 ‘절대 부적격’에 동의했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부적격 사유는 정쟁(政爭)의 산물’이라며 임명장을 주자 그는 취임 회견에서 “(야당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찾아가서 대화하고 또 하고, 모시고 또 모시겠다”고 했다. 불과 2년 전 “내게 한나라당은 박멸의 대상”이라고 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 싶다.

그의 변신이 위장과 가면으로 읽히는 이유는 단지 말 바꾸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자임해 왔다. 청문회에서 “대통령이 직접 (조소하고 조롱하는 표정을) 고치라고 질타했다”는 말도 했다. “이제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다”고 했지만 그는 복지행정에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두고 언젠가 “내 배역이 그렇다. 팔자다”고 하지 않았던가.

취임 이튿날 노인복지회관과 무료 경로식당을 찾은 것부터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르신들 문제’에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이번 주에는 대한노인회 방문 일정도 잡혀 있다고 한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노인 폄훼 문제로 홍역을 치른 것과 무관한 행보일까. 5월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다.

물론 노인 문제는 중요한 복지정책 과제의 하나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그를 복지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국민연금 개혁의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연금 개혁이 그만큼 급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유 장관은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선 아직 한마디도 없다. 선거와 연관지어 오해와 비난을 사더라도 노인복지정책은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다짐과는 대조적이다. ‘더 내고 덜 받게’ 만드는 국민연금 개혁과 표의 함수관계 때문일 것이다.

변신으로 위장한 유 장관의 ‘줄타기’는 아무래도 불안하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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