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시위 농민 사망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지켜본 한 경찰 간부의 푸념이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 내내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증만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수사(修辭)’로 보는 국민을 헷갈리게 했다. 허준영(許准榮) 경찰청장의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도상 대통령이 경찰청장에 대해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허 청장)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은 허 청장이 물러나지 않겠다고 하므로 ‘대통령의 뜻’과 관계없이 허 청장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기자회견 직후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난이 들끓고, 경찰 안팎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허 청장은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전 “내 거취는 내가 결정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임명권자가 뭐라 하든지 사퇴는 안 하겠다는 뜻이다.
현행 경찰법에 따라 허 청장은 2년 임기를 마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국회가 탄핵하거나 본인이 사표를 제출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자신을 경질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임기제를 둘러싼 규정이야 어찌됐건 경찰청장의 임명권자는 분명 대통령이다. 임명권자는 그 권한을 행사할 때 명확해야 한다. 허 청장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본인에게 물러나도록 권유하겠다”고 말해야 할 것이며, 경질할 뜻이 없다면 “허 청장이 농민 사망사건을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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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청장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장의 임기제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지 어떤 사안에도 끄떡없는 만능 보호막은 아니다. 자신이 마치 임명권자나 된 것처럼 말할 게 아니다.
노 대통령과 허 청장의 모호한 발언은 국민만 헷갈리게 만든다. ‘그 대통령에 그 청장’이 초래한 혼란은 경찰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원수 사회부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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