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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2월 2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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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내년 경제운용 방향을 말하면서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체감경기 개선이 더딘 것은 양극화가 심해지는 데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양극화 해소, 경기회복 강화, 성장 잠재력 확충’에 정책의 역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지난 일요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 3주년을 맞아 가진 당-정-청 워크숍에서 “앞으로 남은 큰일은 양극화 문제 등 사회복지 분야에 관한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환위기 이후 상대적 소득격차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현 정부가 들어선 뒤 3년 내리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몰락으로 중산층 해체와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그 여파로 결손가정에서 버려진 아이들과 모은 돈이 없는 노인 등 기본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소외층이 늘고 있다. 전기가 끊어진 집에서 촛불로 버티던 어린이가 화재로 숨지는 참극까지 있었다. 극빈층을 줄이기 위한 사회안전망의 강화는 시급한 국가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양극화의 원인이 상위 2%의 부유층 때문인 듯이 몰아가고, 이들에게는 중과세(重課稅)하는 것이 정의(正義)라고 주장하는 ‘로빈후드 식’ 발상은 정치적 선동으로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양극화 해소에는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여권(與圈) 워크숍에서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기업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지만 서민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부의 쏠림현상은 참여정부가 나눠주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목희 의원은 “양극화 해소와 동반 성장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세목(稅目) 신설, 누진제 강화 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부자 2%를 대상으로 ‘초정밀 세금폭탄’을 때린다는 정부 여당의 부동산대책도 이런 발상에서 나왔다.
글로벌경제 시대에는 세계적 경쟁에서 앞서 가는 국가, 기업, 개인이 당연히 더 많은 부(富)를 차지한다. 삼성과 현대가 창출한 이익은 국내의 빈곤층을 착취한 결과가 아니다.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으로 세계시장에서 이겨 세계의 소비자들에게서 보상을 받은 것이다.
이런 기업과 부자에 대해 죄를 벌하듯이 무거운 납세를 강요하는 것은 ‘기업 하기 좋은 환경, 투자하고 싶은 분위기’ 조성과는 정반대인 ‘투자 방해하기’다. 외자 유치는커녕 국내기업마저 해외로 내쫓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일자리를 줄이고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빈곤층의 자립 의지를 약화시켜 궁핍화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자를 끌어내리는 방식의 격차 해소는 하향 평등화를 낳을 뿐이다.
성장을 촉진하지 못하면서 분배를 강조하는 정치적 행태와 이에 맞추는 정책은 양극화를 완화하기보다 심화시킨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세계적 역사적 경험이 잘 보여준다. 이 정부에서도 3년 동안에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노 정부는 경기를 제때 부양하지 못한 것을 “인위적 부양은 안 한다”는 말로 변명해 왔지만, 중산층이 서민이 되고 서민이 빈곤층으로 주저앉는 결과를 빚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경쟁에서 탈락한 기업과 개인에게 경제적 재기(再起)의 기회를 주는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세금을 무한정 올려서는 경제 전반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 세금이 많은 곳에선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적은 세금으로 지출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더 역점을 두어야 할 일은 과거의 고용 거품을 지탱해 온 국가 주도 경제개발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고용창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경기 상승 국면에서 정치적 분배논리로 내년 경제를 저성장의 늪에 계속 빠져 있게 해서는 안 된다. 투자와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불합리한 제도와 규제를 혁파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
한 부총리가 주장한 교육과 직업훈련의 강화도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실업자를 양산하는 공급 위주의 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이 급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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