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43>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2005-12-20 03:04수정 2009-10-08 16:09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그림 박순철
초나라와 한나라 어느 쪽도 자신이 없어 광무간(廣武澗)을 가운데 두고 노려보기만 하는 사이에 봄이 다하고 여름 4월로 접어들었다. 서광무 꼭대기에서 멀리 누렇게 익어가는 벌판을 바라보던 한왕이 곁에 있던 진평을 돌아보며 문득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밀이 익을 때가 가까워 온다. 밀이 익으면 초나라 군사들은 가까운 들판에서도 군량을 거둘 수 있으니 다시 사납고 거세질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이대로 오지도 않는 원병을 기다리며 마냥 버텨볼 것인가? 아니면 초나라 군사가 더 사나워지기 전에 광무산을 빠져나가 공현(鞏縣)과 낙양(洛陽) 사이로 물러날 것인가?”

하지만 진평은 언제나 그렇듯 태평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목소리도 유들유들하게 한왕의 말을 받았다.

“초나라 군사들 가운데 강동에서 온 자들은 주로 쌀을 먹고 살아온 족속들입니다. 밀만으로는 군량을 삼을 수는 없으니 밀이 익는 것은 그리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계포가 팽성에서 보내주는 쌀이 있어 초나라 군사들이 맹탕으로 굶고 있지는 아니합니다. 거기다가 항왕이 시퍼런 기세로 그들을 이끌고 있으니, 저들의 에움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참과 관영이 이르기를 재촉하는 한편 팽월에게도 사람을 보내 좀 더 활발한 유격(遊擊)을 당부하십시오. 팽월이 초군의 양도(糧道)만 온전히 끊어놓을 수 있다면, 대왕께서 구차하게 물러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팽월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겉으로만 과인의 명을 받드는 척할 뿐, 군사를 내고 거두는 게 도무지 제멋대로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한신에게 지고 쫓겨 간 전횡(田橫)까지 받아들여 보살펴 주고 있다. 한신을 대장군으로 부리는 과인에게 대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왕이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그렇게 탄식처럼 말했다. 이번에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장량이 나섰다.

“그래도 팽월은 대왕께서 보내신 유고(劉賈)와 노관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서로 도우며 잘 싸워 왔습니다. 우리가 광무산에서 이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팽월의 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횡을 받아들인 것은 그 형 전영(田榮)이 살아있을 때의 옛 연고 때문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러고는 한왕 곁으로 다가와 나직하게 일러주었다.

“또 팽월이 대왕을 거슬러 전횡을 받아들였다 한들, 이렇게 군색한 처지에 빠져 있는 대왕께서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칼끝을 거꾸로 겨누고 덤비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고 팽월을 다독여야 합니다.”

한왕도 듣고 보니 장량의 말이 옳았다. 서둘러 위태로운 싸움을 벌이는 대신,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느긋하게 형세를 살피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삼경 무렵이었다. 갑자기 진채 안이 술렁거리더니 사인(舍人) 하나가 달려와서 알렸다.

“적장 하나가 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찾아와 항복을 청합니다.”

자리에 누웠던 한왕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들게 하라. 과인이 그를 보겠다.”

그러자 오래잖아 한 초나라 장수가 한왕의 군막 안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글 이문열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