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40>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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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께서는 나를 두터운 은덕으로 대해 주셨소. 자기의 수레로 나를 태워 주었고, 자기의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으며, 자기가 먹을 것으로 나를 먹여 주었소. 내가 들으니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몸에 싣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그의 일을 위해 죽는다(식인지식자 사인지사·食人之食者 死人之事)고 했소이다. 내 어찌 이익을 바라 의리를 저버릴(향리이배의·鄕利而倍義) 수 있겠소?”

그런 한신의 말을 듣자 괴철의 얼굴은 더욱 굳고 어두워졌다. 이제는 결연한 기세까지 보이며 숨결을 가다듬어 말했다.

“그대는 스스로 한왕과 친분이 두텁다 여겨 그를 위해 만세(萬世)가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공업을 세우려 하시지만 신이 보기에는 그것이 큰 잘못인 듯합니다. 처음 상산왕 장이(張耳)와 성안군 진여(陳餘)가 벼슬이 없었을 때에는 서로를 위해 목이 잘려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장염(張(암,염))과 진택(陳澤)이 죽게 된 일로 다투게 되면서 서로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진여가 제나라 왕 전영(田榮)과 짜고 상산왕 장이를 쳐부순 뒤, 그 땅을 빼앗아 헐(歇)을 다시 조왕(趙王)으로 세웠습니다. 그러자 장이는 처음 항왕에게로 달아나려다 오히려 항왕을 저버리고 사자로 온 항영(項영)의 목을 베어 한왕에게로 의지해 갔습니다. 이에 한왕이 장이에게 군대를 나눠 주어 지수((저,지,치)水) 남쪽에서 조나라 대군을 쳐부수고 성안군 진여를 목 베게 하였습니다.

상산왕 장이는 이른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뒤집어 오히려 성안군 진여를 목 베고, 성안군은 아비같이 따르던 상산왕에 의해 머리와 몸통이 따로 떨어지니, 둘 모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알아줄 만큼 지극하던 사이가 마침내 서로 잡아 죽이려고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걱정거리는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려 짐작하기 어려운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환생어다욕이인심난측야·患生於多欲而人心難測也).

지금 그대는 충성과 믿음으로 한왕과 가까워지고자 하시지만, 아무래도 그 사귐은 장이와 진여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귈 때만은 못할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대와 한왕 사이가 틀어질 일은 저 장염과 진택의 일보다는 많고 큽니다. 따라서 신이 보기에는 한왕이 결코 그대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은 크게 틀린 일입니다.

옛적에 대부 문종(文種)과 범려(范(라,려,리,여))는 망해 가는 월(越)나라를 붙들고 그 왕 구천(句踐)을 도와 패자(覇者)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드날렸지만 끝내 자기 몸은 죽게 되었습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도 쓸모없어져 삶아 먹히기 마련입니다. 사귐으로 보아도 그대와 한왕은 장이와 진여의 지극함에 미치지 못하고 충성과 믿음으로 보더라도 대부 문종과 범려가 월왕(越王) 구천에게 바친 것보다 못합니다. 따라서 그대는 그 두 가지 일을 거울로 삼아 깊이 살피고 헤아리셔야 합니다.

거기다가 신이 듣기로, 용맹과 지략이 주군을 떨게 하는 자는 그 몸이 위태롭고(용략진주자신위·勇略震主者身危) 공로가 천하를 뒤덮을 만한 자는 그 상을 받지 못한다(공개천하자불상·功蓋天下者不賞)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때껏 말없이 듣고 있던 한신이 불쑥 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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